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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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야

2021-09-07 (화) 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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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소리 만들어 부르지 않아도 가을이라고 하면 모든 생각이 다나요. 똑같이 좋은 날씨지만 봄과 틀립니다. 냄새도 틀려요.

봄은 젊음을 상징하며 싱싱한 시작입니다. 여자들이 좋아하고 꽃이 피는 계절. 봄바람은 살랑살랑 그냥 갑니다.

가을바람은 내 가슴이 적셔지면서 묵직하게 오고 꼭 내가 보내는 듯이 지나갑니다. 매미소리에 코스모스가 피고 국화가 그윽이 보이고 억새풀이 누렇게 이리저리 흐늘거리며. 단풍잎 떨어져 내 가슴 미어지게 하고. 제비가 떠나가고 감이 익어가고 파란하늘에 쪽빛바다도 보여요.


어렸을 적 소풍도 가을에 갔고 운동회도 이때 열렸어요.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낚엽 밟으며 영혼을 살찌웁니다. 남자의 마음을 더 남자답게 익혀놓습니다.

봄 처녀 제비 오시고 가을 남자 제비와 떠납니다. 사계절에 내 나이가 그와 같은 계절인가요. 벌써 겨울이 가까웠단 말인가요. 우울함과 고독함이 어쩔 수 없이 오는 계절. 누가 잊혀진 계절이라고 노래를 부르는가. 가을은 생각이 많아지고 고독에 내 정신을 놓아 살 수 있는데 쌀쌀해지는 겨울에 가까우면 마음도 시리고 몸도 시럽습니다.

아. 내 인생도 가을. 곧 겨울이 온다고 준비합니다. 모든 것이 좋아요. 진짜 좋습니다.

어디론가 진짜인 곳으로 이 여행을 끝마치는 기분입니다.

여행은 너무 길어도 지루해요. 적당하게 볼 거 보고 다잡을 거 다잡아서 바르고 곧게 꼿꼿이 가렵니다. 너무 이르다구요. 아무도 몰라요. 준비는 일찍 하고 길어도 좋아요. 있는 대로 살다가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오라는 대로 갑니다.

짧은지 긴지 한 세월 마무리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마무리입니다. 그냥 아닌 듯 살아가는 게 우리입니다. 조금 길어도 괜찮아요….

<이근혁 패사디나,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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