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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 겉바속촉 겉속속겉

2021-09-01 (수) 김범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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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어느 날 친척 어른이 사가지고 온 통닭을 처음 먹었을 때의 입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지금의 겉바속촉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부드러운 닭고기 가 그냥 입에 미끄러지듯이 넘어갔던 그 맛은 지금 어떤 고기를 먹어도 그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한국은 정말 미국만큼이나 풍요로운 나라가 되었다. 치킨 사업이 얼마나 번창했는지 모른다. 누구나가 한번쯤은 치킨사업을 생각해 볼 정도로 치킨음식이 보편적이 되어버렸다. 닭고기의 맛의 생명은 ‘겉바속촉’이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하게 부드러울 때 닭고기의 맛이 더 살아난다. 마치 말고기를 먹는 것처럼 말라서 질기다면 누가 사먹을 수 있겠는가? 튀김가루를 발라서 적정한 온도와 시간에 잘 맞게 튀긴고기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의 맛있는 닭고기가 될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도 역시 겉바속촉처럼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 맛있고 매력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속은 알지 못한다’라는 속담처럼 알지만 모르고 알려고 해도 알수가 없는 것이 사람이다. 동물은 참 단순하다. 집의 애완견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하나를 주면 하나의 반응이 나오고 주는 만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아니 못해줘도 그래도 주인이라고 반기도 꼬리를 흔들며 따라온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속담에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가 할 것 없이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런 것처럼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나 쉽지가 않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 하기가 어렵다. 겉과 속이 달라서 겉이 속인지 속이 겉인지 알 수가 없다. 좋은 뜻으로 외유내강 내유외강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상은 안이 강한지 밖이 강한지 안이 부드러운지 속이 부드러운 모를 때가 많다. 겉은 겉일 뿐 속과 겉이 같기가 쉽지가 않다. 말을 하는 것도 어렵고 말을 듣는 것도 어렵다. 왜냐하면 말하는 입술과 들리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잠언23:7)”

속과 겉이 같으면 때로는 허술한 사람이라고 무시를 당할 수 있다. 속을 너무 드러내어서 비밀이 없는 사람이 되면 얕잡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한 대로 느낀 대로 그대로 밖으로 드러내면 여러 면에서 오해를 살 수 있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오히려 도저히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사람보다는 훨씬 더 신사적인 사람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속과 겉을 드러내는 속도를 늦추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늘 그렇다면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사람으로 굳어질 수 있다.

사람은 솔직해야 한다. 그렇지만 조심해야 한다. 겉과 속이 너무 자주 드러나면 유치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르면 다중인격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겉은 속이고 속은 겉인 것, 겉속속겉을 유지하는 투명한 인격은 모두에게 존경받을 것이다. 사람이 닭보다 못한 사람이 안되려면 최소한 겉속속겉은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범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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