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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이야기

2021-08-30 (월)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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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화두가 되고 있는 소설 ‘파친코’ 는 재미동포 1.5세인 이민진씨가 집필한 1910년부터 1989년 까지 약 80여년간 한가족의 4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비애와 배척과 애환이 섞인 일본땅에서 살아온 재일교포들의 대서사시 이기도 하다. 이민진 작가는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으며 30여년을 구상하고 연구한 그녀의 역작이 ‘파친코’이다.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조선인들은 토지를 잃어 버리고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 하였고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젊은이들은 중국 만주로 건너 갔으며 현재도 이들의 후손들이 조선족이라 불리우며 만주에 살고 있다.

또한 일자리를 찾아서 아니면 강제징용 되었거나 또는 유학으로 일본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건너간 이들의 후손들이 오늘날의 재일교포들이다. 파친코는 재일조선인들이 어떻게 차별과 냉대와 고난속에서 가족이라는 끈끈한 유대를 가지고 인생여정을 헤쳐 나갔는지를 그리고 있다.
부산, 영도에서 하숙집을 하고 있는 선자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파친코는 하숙집 손님으로 온 이삭과 선자가 결혼해 오사카로 떠나게 되며 오사카에는 이삭의 형님 요셉이 살고 있었다.

이 책의 2부에서는 선자의 자부심이자 생명이기도 하였던 큰 아들 노아가 와세다 대학을 다니던 중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노아는 일본인 아내와 가족을 이뤄 살고 있었고 조선인 이라는 것이 탄로나자 자살로 생을 마감 하면서 선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그후 선자의 유일한 손자이며 둘째 아들 모자수의 아들인 솔로몬은 외국인 학교를 다녔고 미국 유학까지 마치고 외국인 금융회사에 다니지만 일본인 상사로 인하여 해고 당하고 만다. 결국 일본사회에서는 조선인들은 취직이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으므로 결국 파친코에서 일을 하며 파친코를 경영해야만 하는 슬픈 현실을 받아 들일 수밖에 없었다. 파친코는 가난과 범죄의 냄새를 풍겼고 야쿠자와 연관돼 있으므로 일본 주류사회에서는 기피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것 또한 세월이 흘러 가면서 모자수는 성공적으로 파친코를 경영하고 선자 가족은 생활이 풍요로워지고 윤택해진다. 그리고 점점 일본화가 되어간다. 모자수는 일본인 여인과 재혼하며 솔로몬 역시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이 책의 주인공 선자가 가족을 이끌어 가는 주춧돌이다. 선자의 아버지는 언챙이였으며 선자는 학교를 가본 적이 없는 문맹이었고 가난하였지만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삶을 살아간다.

선자는 삶의 험난한 여정에도 결코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노아의 대학 등록금과 원폭 피해자인 요셉의 치료비를 감당하느라 절대빈곤에도 묵묵히 설탕과자를 만들어 팔며 삶을 이어 나갔다. 그녀의 첫사랑인 고한수는 성공한 파친코 부자로 오시카에 살고 있었지만 그에게 구걸 하지 않았고 결코 선자는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에 선자는 신사참배 거부로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남편 이삭의 무덤을 찾아가 한 맺힌 독백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은 재일교포들의 눈물이자 우리 모두의 눈물이다.

이 책에서 이민진 작가는 일본을 원색적으로 극악무도한 민족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일교포들을 무조건적으로 미화하지도 않는다.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역사를 말하고 있다. 그 당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고 서양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메이지유신을 일으키고 변화해 가고 있었지만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일관하였다.
일본은 언제나 가해자였고 조선은 언제나 피해자였다. 하지만 당당하고 신념에 찬 이민진 작가의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는 외침이 우리 모두에게 메아리 쳐 온다.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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