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우리 집 골목은 사이좋은 미니 UN

2021-08-29 (일) 최숙자 / 비엔나, VA
크게 작게
집밖에서 애들의 목소리가 많이 나기에 나가보니, 우리 윗집의 드라이브웨이에 동네 애들이 모여서 놀고 있고, 대화를 하는 젊은 부모들도 그들의 애들도 모두 피부색깔이 달라 미니 UN인 듯 착각이 든다.
우리 아들이 대학에 간 후, 허전한 마음에, “이 동네는 운치가 좋다”는 복덕방의 소개로 이 집에 이사온지 벌써 24년이 되었다.
처음에 이사오니, 전에 살던 동네와는 달리, 이웃끼리 서로 분위기가 싸늘해서, 우리는 이웃을 우리집에 초대해서 한국음식을 소개하고, 남편과 옆집의 이란 사람은 눈이 오면 많이 쌓이기 전에 미리 치워주고, 새로 이사온 집에는 환영을 하는 작은 선물을 전하고, 연말에는 조그만 선물을 주면서 이웃의 화목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이 동네로 처음 이사왔을 때는 여섯집 중에 백인부부 가정이 세 집이었고, 백인 남편과 중국계 부인 가정, 이혼한 이란 남자가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까다로워서 이웃을 힘들게 하시던 앞집 백인 부부가 돌아가신 후에는, 젊은 월남 부부가 딸 둘과 함께 이사를 왔다.
남편은 경찰, 부인은 네일 살롱을 세 개를 운영하는데, 흑인 미군이 월남에 가서 낳은 아이라 아버지도 모른다고 한다. 손이 커서, 자기 가게에 양란이 많다고, 나에게도 하나 나누어 주고, 자기 옆집의 백인 변호사의 부인은 자기의 가게 세 곳을 모두 다녀갔다고, 나에게도 꼭 오라고 다짐을 받는다.

중국계 부인 가정이 이사한 후에는, 뉴저지의 대학원에서 만난 키 큰 백인계 불란서 남편과 키 작은 타일랜드계 부인이 이사와서 귀여운 아들 세 명을 낳아 잘 키우고 있다. 남을 항상 배려해주는 그 젊은 부부 덕분에 우리 동네가 더욱 따뜻해져 가고있다. 부모를 닮아서 애들도 인사를 잘 하고, 우리가 마당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오는 애들이 우리를 즐겁게 하며 우리의 친손자같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백인 치과의사 부부가 이사를 간 집엔 딸 둘의 흑인부부가 이사왔다. 남편은 아프리카의 좋은 집안출신으로 연방정부에서 일을 하고, 미국 흑인인 부인은 간호원으로, 아주 교양이 있고, 열심히 정원을 정성껏 가꾸어서 우리를 흐믓하게 한다.


그 앞집에는 큰 로펌에서 파트너로 일하는 변호사 백인 부부가 쌍둥이 아들과 살고 있는데, 우리 동네가 좋다고 하며 더 큰 집으로 이사가지 않고, 우리 골목의 유일한 백인 가정으로 남아 있다.
연방정부에서 오래 후진국을 원조해 주는 경제학자로 일한 남편에 의하면, 타일랜드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민족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젊은 타일랜드 여자에게는 자석같이 주위의 사람들이 따르고, 그들을 위해 자연스럽게 선행을 하니, 새로 이사온 뒷 골목의 세 명의 자녀를 가진 백인 가족들도 그 마당에서 함께 어울려 즐겁게 지낸다.

요즘엔 나이가 들어 이웃을 집에 초대하지는 않고, 연말에 선물로 인사를 할 뿐이다. 얼마전 대학 선배님이 과수원에서 따오신 맛있는 복숭아를 먹어보고는, 이제는 은퇴해서 시간이 많은 우리도 그 곳에 가서 복숭아와 넥타린을 많이 사서, 24년 만에 처음으로 여름에 과일을 이웃에 나누어 주니, 너무나 즐거워 한다. (며칠전에 매릴랜드주에서 과수원에 다녀오는 길에서 과속을 했다고 벌금을 내라는 연락이 왔으니, 복숭아 값을 황금값으로 올린 셈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우리 골목은 전세계에서 모인 사이좋은 미니 UN으로,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때까지 이 골목의 우리 집에 살아 보려고 기도를 한다.
P. S. 동네의 교회에 다니는 백인남자한테 이 글의 내용을 얘기를 했더니, 자기 교회의 ESL 클래스에서 사용하고 싶으니, 영어로 번역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최숙자 / 비엔나, VA>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