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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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골초들

2021-08-19 (목)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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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8월하고도 13일, 더구나 금요일이다. 미신 같은 거 믿지 않는다. 하지만 구태여 남들이 거의 다 싫어한다는 날이라 어제부터 집사람과 내일은 꼼짝 말고 밥이나 해먹고 아무 일도 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나 어디 간단히 그렇게만 되나 말이다. 무료한 나머지 좁은 집안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오르락 내리락 한다. 드디어 일을 낸다. 옛날 꼬깃꼬깃한 연락처를 적어 넣은 노트북을 열어본다.

믿기지 않게 옛날 알링턴 병원의 보스 전화번호가 눈에 크게 띄었다. 내친김에 플로리다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기대 안했지만 수화기 건너편에서 Debbie(보스의 부인)인 듯한 낭랑한 여인의 목소리. 맞다, 맞어!
이탈리아 출생인 보스는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1년 전 별세하셨다고 한다. 이것도 기획된 13일의 금요일의 나쁜 소식인가? 난 그렇게 생각 안한다. 오랜만에 재연결 되어 90세 수명을 산 옛 보스 소식을 들었으니 오히려 괜찮은 13일의 금요일이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각설하고, 그는 대단한 골초다. 담배도 Carlton brand만 고집, 휴가 갈 때도 이것만 몇 보루씩 사 가지고 간다. 체인 스모크(Chain Smoker)라 6개월마다 가슴 사진을 병원 지하실 X-Ray과에 내려가 찍고 온다. 거의 담배에 관한 한 강박증세(Obsessive- Compulsive Reaction)다. 무슨 연유가 있겠지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한번은 수술 전 환자 면담시 이름이 패튼(Patton)이었다. 미국이 배출한 장군들 중 손꼽히는 명장, 패튼 장군과 이름이 동일하여 우스개로 물어봤더니 친척이란다. 성은 같고 모습마저 비슷한데 이 사람 역시 심장이 그렇게도 나쁜 병력 소유자임에도 심한 흡연자였다. 금연을 권유하자 오히려 화를 낸다. 연유인즉 아내가 얼마 전 저 세상으로 갔는데 그녀는 술, 담배 전혀 모르는 청교도적 생활을 했음에도…. 허, 그렇다면 계속 피시구려!


또 다른 예, 셋째 형님이시다. 수년전 형님의 상을 당해 귀국하여 형님이 쓰던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그대로 담배 여운이 남아 있었다. 오죽 골초였으면 조카가 작은 아버지인 나와 성묘 갔을 때 술잔과 함께 주섬주섬 꺼내어 올리는 것이 담배다. 성냥불에 불 붙여 아버지께 올리는 효자 조카를 보았다. 그 정도로 형님 또한 골초시다. 고등학생 때 대학생이던 형님과 한방을 썼는데 한겨울이라도 담배 연기를 빼기 위해 온 방문을 다 열어놓고 난리를 치던 생각이 난다.
나 자신도 대학 입학 후 기념비적(?), 지금 생각하면 우둔해서인가? 만용이겠지만 담배를 피기 시작해 10년 만에 도미 후 금연에 성공했다(다른 방법 다 소용없고 의지만이 유일한 금연방법이다). 2년이 모자란 반세기 금연 인생, 이제까지 건강의 비결이긴 하나 멋(?)은 없는 인생이다.

우리나라 시인 중엔 골초로 공초 오상순 옹이 계셨다. 제자들이 상납(?)하는 쓴달래(진달래) 담배 애연가셨다고. 꽤 오래 사셨던 걸로 기억한다.
중국의 등소평 또한 애연가. 이런 몇몇 특수한 경우만 예외적이지 흡연은 단연코 건강을 해치는 일등 공신의 나쁜 습관이라 아예 처음부터 입에 대지 않도록 특히 청소년들을 잘 선도해야 할 것이다. 마약보다도 흡연 중독이 되면 더 끊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번 코로나 희생자들 중에 모르긴 몰라도 여러 위험요소들 중 특히 흡연자들이 단연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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