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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산봉우리

2021-08-19 (목) 이명숙/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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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산 정상에 고급 음식점이 있습니다. 작은 딸 내외와 손자, 손녀를 따라 케이블카를 타고 까마득히 높은 산에 기어오르니 다시 깊은 산 계곡으로 곤두박질해 내려가고 또다시 높은 산봉우리로 기어올랐습니다.
이렇게 깊은 산 계곡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산 정상에 오르니 한여름 복중인데도 산봉우리에는 허옇게 눈이 쌓여 있고 구름은 발아래 머물러 있으며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사바세계가 마치 개미집 같이 작게 내려다 보였습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대자연에 도취되어 있노라니 어느덧 해가 서쪽 하늘로 일몰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은 찬란함의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대지에 어두움이 드리우기 시작하자 동쪽 하늘에 크고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달 또한 사바세계에서 바라보는 달과는 달리 어찌나 크고 빛 또한 짙은 주황색으로 그 빛의 찬란하고 아름다움이란…. 입에서 절로 감탄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콜로라도의 아름다운 달을 바라보고 어느 작가가 ‘콜로라도의 달’이라는 노래 가사를 지었나 봅니다. 그 찬란하고 신비스러운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갑작스레 세찬 바람이 불고 흑운이 몰려와 달을 가리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아름다운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께 새삼 고개 숙여 고마움의 경의를 보내드렸습니다.

날이 어두워져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더는 볼 수가 없어 그만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음식점 안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안에서는 은은하게 아름다운 경음악이 흘러 나왔습니다. 그 은은한 음악소리를 들으며 의자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였습니다.
음식점에는 큰 벽난로가 있어 장작불을 피워 실내를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자 손자, 손녀가 좋아서 재잘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이것이 바로 지상낙원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님과 조상 어른들께서 이러한 행복을 내게 주시는구나 하는 마음에 고마우셔라, 참으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드렸습니다.


음식을 먹고 있노라니 악사가 각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신청한 곡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내가 신청한 곡은 슈만의 피아노곡으로 ‘꿈꾸는 일’이라는 뜻을 지닌 ‘트로이메라이(Traumerei)’였습니다. 사람들이 곡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박수를 치며 앙코르를 외쳤습니다.

그리하여 악사가 다시 한 번 그 곡을 연주하여 주는데 이번에는 피아노까지 곁들여 연주해 주었습니다. 아름다운 곡 ‘트로이메라이’처럼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악사에게 팁을 건네주고 밖으로 나오니 칠흑같이 어두웠고 함박눈이 계속하여 내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담요 한 장씩을 나누어 주어 그 담요를 몸에 두르고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습니다. 올라올 때와 같이 태산준령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케이블에 눈이 쌓여 행여 케이블카가 미끄러져 탈선을 할까봐 손자, 손녀를 꼭 끌어안고 마음을 조이며 앉아 있으려니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련히 잘 알고 설비를 하였으련만 객쩍은 노파심으로 온몸이 탈진 하였습니다. 태산준령을 반쯤 내려오니 한여름 복중이라 더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각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대자연과 인공으로 빚어진 사바세계가 어우러진 그 아름다움은 어찌 몇 마디 글줄로 표현이 되겠습니까.
내 생전에는 다시는 가볼 수 없는 거대하고 수려한 콜로라도의 산봉우리야 천년, 만년 묵묵히 위풍당당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으려무나. 경이로워라.

<이명숙/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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