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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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2021-08-17 (화) 박보명 / 매나세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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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손녀가 할머니에게 “왜 요즈음 친구를 만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응, 그러니까 하늘나라에 갔어!”
손녀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할머니는 언제 하늘나라에 가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입이 붙었다. 머리가 혼란스런 가운데 세상의 셈법도 어려운데 갑작스런 질문에 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나도 모르게 독백처럼 “가만있자, 계산이 어려워서…”라며 뜸을 들이다가 “음, 네가 중학생쯤?”라고 말하는 순간에 목에 울음이 차올랐다. 손녀가 가만히 내 목을 안고 “할머니, 그럼 제가 천천히 자랄래!”라고 말했다. <어느 할머니의 육아일기 중>

그 많은 나라 중에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지도에도 없는 나라. 가 볼 수도 없는 나라, 같이 갈 수도 없는 나라, 언제 갈지도 모르는 나라, 내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서 아버지, 어머니가 가신 나라.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갈 나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언제 어디로 가셨지?’ 하고 물으면 하늘을 보며, 또는 눈 감고 잠자는 시늉하는 나라!
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사는 것이 기적인 줄 알면서도 경쟁하고 출근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여행가고, 노래하고, 춤추고, 같이 수다를 떨고, 야단 부리면 사는 존재인가 보다. 흔히 젊은 사람들은 애인 만나는 기대와 결혼의 설렘을 안고 단잠을 잔다지만 병실이나 요양원에 있는 사람들은 언젠가 갈 날만 멍청히 기다리고 있는 여행객이 아닌가.
누가 말했듯이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죽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옛 어른들은 근사한 한자로 소천하셨다는 표현을 쓰는데 ‘하늘에서 불렀다!’는 말이 아닌가!

세상이 많이 발달해서 시간을 조절는 기계나 약이 발명이 되면 좋은 순간을 느리게, 하늘 나라로 가는 것도 느리게, 웃는 것도 느리게, 맛있는 음식도 느리게 먹게 하고, 보기 좋은 장면도 느리게 조절하는 것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왜 좋은 시간은 빨리 가고, 슬픈 일은 더디 가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또 꼭 하늘나라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말이다. 사람들의 수명도 늘어나고, 좋은 약도 개발되고 하니 ‘ 지상낙원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오래 오래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러면 사람들 때문에 지구가 무거워서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만약에 나무나 풀이 무성하게 자라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무성한 여름에 나무나 풀들이 자라고 추운 겨울에는 시드는 자연 법칙을 따르는 것 아닐까! ‘태어난 순서는 있는데 죽는 순서는 없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인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모든 걸 자연에게서 배운다는 말도 진리 아닌가.
어느 신부가 쓴 글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는 상태이다. 모순되고 살벌하고 혹독한 지금 이 세상에 사랑과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가슴 짜릿하지 않는가!”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하는 순간이 바로 하늘나라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순간을 잊고 사는 세상, 행복을 누리고 살면서도 불평하는 사람, 부모 형제와 단란한 순간을 감사하지 않는 가정, 작은 화분 하나도 가꿀 줄 모르고 하늘을 원망하는 심보, 자신도 제대로 수양이나 실천하지 않고 떠들어 대는 설교, 하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스마트폰 중독’에 빠져 고개 숙인 머리로 복을 달라고 중얼대는 마음들이 제정신으로 돌아 왔으면 좋겠다.
하늘나라를 생각하며 욕심을 내려놓고, 순진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길 소원해 본다. 누가 말하기를 ‘하늘 나라는 네 마음속에 있다’ 란 말을 곱씹어 본다.

<박보명 / 매나세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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