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미소
2021-08-16 (월)
윤영순 / 우드스톡, MD 기자
1970년대 초, 미국 유학길에 오른 남편을 따라 설레는 마음으로 나 역시 몇 년 후 미국 땅에 첫 발을 디뎠다. 낯선 타국, 그 중에서도 세계의 심장부 뉴욕에서의 생활은 피부로 와 닿는 언어의 불편함과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친 것처럼 문화적인 어색함으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새댁 시절이었다.
뉴욕 거리와 사무실에는 백인 일색인 반면, 변두리 공장지대의 노동자 대부분은 빈한한 흑인들이었으며, 유색인종이란 차이나타운의 중국인과 소니, 파나소닉, 후지필름 등등 미국인의 입 맛에 맞는 제품을 들고 온 일본인, 그리고 가끔 눈에 뜨이는 소수의 한국인뿐이었다. 높은 빌딩 숲을 오가는 젊은 뉴요커들의 발걸음도 상큼 발랄하였으며, 옷깃만 스쳐도 미소 지으며 “미안해요”라고 하는 말은 매번 나를 당황하게 했다.
거리에서뿐 아니라 울워스(Woolworth) 백화점과 키이푸드(Key Food) 식료품점, 그리고 동네에서 마주치는 생면부지의 파란 눈 아주머니에 이르기까지 몸에 밴 이들의 미소와 여유있는 표정은 지금도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하철 7번 종점인 외각의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홀의 맞은편에 살고 있던 독신인 초로의 백인 아주머니는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는 제의를 해 왔다. 자신의 이름을 괴벨스라 소개하며, 독일의 나치 괴벨스(Goebells)와는 집안이 다르다고 미소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선생님 같은 발음으로 한동안 영어교습을 받았던 녹음테이프가 아직도 그 당시 뉴욕생활 중 간직했던 여러 소지품 중에 남아있다. 녹음된 그녀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되살리게 한다.
그 당시 그녀의 나이만큼 초로의 모습으로 반세기가 지난 뒤 다시 시작한 미국 생활에서 이제는 1970년대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변화를 느끼게 된다. 50여 년 전 넓은 대로를 활기차게 달리던 형형색색 무지개 빛 예쁜 승용차들의 색깔이 지금은 무미건조한 흰색, 검은색의 단조로운 색깔로 탈바꿈하여 도로를 거칠게 질주하고 있다. 무지개 색깔이 왜 흑백으로 탈색이 되었을까? 나 혼자만의 푸념일까?
길가 좁은 인도로 내몰린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하나 같이 무심한 듯, 눈길을 피하거나 외면하기 일쑤다. 사람의 온기를 품은 자연스런 미소 대신 부자연스런 표정으로 저마다 마음의 벽을 쌓아가고 있는 듯하고, 언제부터인가 이들의 얼굴 표정 속에서 미소를 읽을 수 없는 것은 굳이 내 나이 탓만은 아닌 듯하다.
20-30대에 겪은 미국사회와 70-80대에 부딪친 이곳 사회의 모습에서 무언가 변모하는 미국의 단면을 착잡한 기분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무리 현대사회가 알 수 없는 회색빛 안개 속에 가려있다 한들 세상살이 살맛이 무엇인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다정스런 미소, 그 미소가 오늘따라 그리워진다.
<윤영순 / 우드스톡, MD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