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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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넋두리

2021-08-10 (화) 이경주 / 일맥서숙문우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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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행열차 지나간 석양의 플랫폼엔
녹슨 시간만 철길 위에

목쉰 기적 뒤
고요한 적막 뿐

객차 안엔
푸성귀의 풋내도
질펀한 갯논 바지락 비린내도
와지끈 시끄럽던 애환도
고향 떠난 길손의 서러운 객담도
옷깃을 스치는 소박한 정담도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무지개 같이 황홀했던 꿈
동백꽃보다 진한 사랑도
두견주(杜鵑酒) 보다 진했던 우정도
모두 앞서 보내고
기름기 잃은 거친 손으로
솟대 같이
빈 하늘을 떠받치고
삶의 초점은 흐려만 가는데
인생에 무슨 재미있겠나

나이테 90넘은 초록빛 녹음이
석양 노을에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지난 세월의 아름다웠던 존재들
가분수 같은 가쁜 숨 몰아쉬며 올라 선
선왕당 언저리
큰 도끼로 마구 찍어낸 도끼눈깔
대문짝 이빨이 귀에 걸리고
허리 굽은 목각의
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
수백 년 풍우 한설에 가시 뼈만 남은
옹이박이 장승 내외
혼과 넋은 없어도 평생을 해로하니
이 어찌 천하 대복(大福)이 아니겠는가?

연습이 없는 인생길
소풍 같이 왔다 가는 여정 길
욕심 없이
베풀고 나누며
선하고 어질게
머리에 꽃구름 이고
말없이 생색 없이
길 잃은 나그네의 이정표로
그렇게 찰지게 살 수 없으랴

<이경주 / 일맥서숙문우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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