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서둘러 달아오르고 있다. 정치 개혁이나 국가 발전의 충정보다는 정치인들의 탐욕과 허영만이 넘치는 것 같아 유감이다. 대통령 선거가 앞으로 7개월이나 남았지만 마치 투표날짜가 열흘 앞으로 다가 온 것처럼 그 열기가 너무나 뜨겁다. 이게 정상인가. 아무리 냉정한 눈으로 보려해도 천박하고 치졸한 환경이 연출되어 입맛이 떨어진다.
그렇게도 튀어나오지 않기를 바랐던 ‘지역차별’ 논쟁이 벌써 등장해 선거 분위기가 막장으로 가고 있다. 정책을 가지고 충돌하는 경우는 토론으로 합의를 볼 수 있겠지만 지역차별로 상처를 입힌 경우는 두고두고 오래오래 한으로 남는 경우가 많은 것이 우리 민족 모두의 경험이다.
어느 나라 역사든 마찬가지겠지만 지역차별, 지역감정 사건은 대부분이 정치세력의 정권보호 차원에서 시작된다. 권력자들의 야욕에 순진한 백성들은 영문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리게 마련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한반도 통일 후 후백제 견훤의 반발을 늘 우려했다.
그래서 꺼내 든 것이 ‘도참설’이다. “금강이 서에서 동으로 역류하니 금강 하류 사람들은 ‘반골’이다”라는 요지였다. 그리고 이런 터무니없는 논리를 내세우고 후백제 왕족들과 호남 토호세력의 자녀들을 개경(개성)으로 마구 인질로 잡아갔다.
조선 왕조에 들어서도 집권 세력의 이기적 국가 운영 관습은 개선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권력구조가 단순하여 ‘가문’의 기득권을 우선시하는 사상이 거의 공식처럼 이어져 왔다. 관직(벼슬자리)이라야 군부요직을 합쳐도 800여개 내외였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니 양반과 천민 계급주의로 가려내고 다른 지방 백성들의 진출을 배척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지워낼 수 없는 사건은 전라도의 고봉 기대승과 경상도의 퇴계 이황의 성리학(주자학) 논쟁으로 사림파와 훈구파가 등장하고 다시 동인 서인, 노론 소론 등 이른바 사색당쟁으로 내분이 심화되고 지역감정을 격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16세기 말 ‘기축옥사(송강 정철) 사화 때 무려 720여명의 호남 유학자들이 역모로 몰려 죽임을 당한 것이 한층 더 지역감정에 불을 붙인 기록도 남아 있다.
근세에 들어서도 윤보선 전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위기를 느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효상 당시 국회의장과 짜고 영남표 75%를 휩쓸어 간 영남 단결론, 그리고 5.18 광주학살 만행 사건도 지역감정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김영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로 노태우의 군부정권 5년 연장도 지역감정에서 비롯된 헛발질 아니던가. 김종필이 ‘충청도 핫바지론’을 들고 나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그를 힐난했던가.
도로시설, 교통수단 발전으로 전국이 일일권을 지나 ‘시간권’에 들어서 있는 오늘이다. 온 국민이 이웃이 돼 있는 마당에 이재명 후보가 ‘호남출신 필패론(백제론)’을 거론한 것은 결코 수긍 안 되는 망발이다. 그는 출마 선언을 한 당일 안동으로 내려가 ‘역차별론’을 거론하여 비난이 쏟아지자 호남이 아니고 수도권 얘기를 한 것이라고 얼버무린 바 있다.
그는 백제론에 대해 이낙연 후보에게 “잘 해보라”고 덕담을 보낸 것인데 지역감정을 거론한 것은 이낙연 후보라며 오히려 상대를 고발했다. ‘적반하장(도둑이 오히려 매를 든다)’이 아닌가. 이재명은 정직하게 “실수했다고” 한 마디만 고백하면 될 것을 자꾸 감추려다 만들어 내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온건하다는 정세균 후보까지 이재명 후보의 ‘백제론’이 보도되자 “역사상 최악의 발언이다. 당장 후보를 사퇴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쓰지 마라)는 옛말이 있다. 이재명 후보가 왜 ‘지역차별론’을 꺼내들었는지 의도가 불순해 보인다. 누구든 대통령이 되려면 덕(德)이 필수적이다. 잔꾀, 모략, 사술 가지고는 대통령이 되어 봤자 국가 불행밖에 기대할 게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재주를 부리다니… 절대 안 될 일이다. (571)326-6609
<
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