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코로나19의 재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델타변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다 백신접종률이 정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델타변이로 주식시장 불안정성이 커지는 등 경제마저 크게 흔들리고 있다.
1년 넘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는 몇 가지를 확실히 알게 됐다. 첫 번째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진화하면서 새로운 변이들이 출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다. 머지않아 오메가 변이가 나올 것이며 그리스 알파벳 순서에 따라 이름이 붙게 될 미래의 변이들은 우리를 곁에 아주 오래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백신의 뛰어난 효과가 확인되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19 백신은 감염예방에 뛰어날 뿐 아니라 변이에 의한 돌파감염의 경우에도 중증이 되거나 사망할 확률을 현저히 낮춰주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어차피 코로나19가 단기간 내에 종식될 수 없다는 것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면서 희생자들을 줄이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모두가 백신을 맞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치적 이유와 개인적 소신을 내세워 백신접종을 거부하고 심지어 이를 조롱하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다.
누구에게나 내 소신과 맞지 않는 것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그 개인의 손해와 희생으로만 끝나는 것이라면 개인의 선택 영역에 속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모두의 건강과 안전이 걸려 있는 문제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코로나19 보건위기가 바로 그렇다. 코로나19의 발생과 확산 그리고 재확산 상황 등을 살펴볼 때 과연 자율성에 기댄 백신접종만으로 위기를 잠재우고 극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주별 접종률의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주별 경계선을 가리지 않는다. 어처구니없는 백신 접종률 편차가 지속되는 한 ‘미국의 안전’이란 없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준다. 하지만 마냥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 미국의 역사는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집단적 의무를 개인의 이익과 자유보다 앞세웠던 많은 사례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미증유의 경제위기인 대공황이 닥치자 1935년 미국은 근로자들이 자신들 수입의 일정부분을 노년층 부양을 위해 납부토록 하는 소셜시큐리티 대개혁을 시행했다.
또 전시에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과감한 세제개혁과 징병제 등을 통해 국가의 위기에 훌륭하게 대처해온 선례도 있다. 백신과 관련해서도 주와 지방정부들은 몇 가지 백신접종을 받지 않으면 학령아동들의 취학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직 연방 차원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지만 점차 많은 기업들과 대학들 병원들 그리고 지자체들이 코로나19 백신접종 의무화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개인들의 자율적 결정에만 맡겨 놓기에는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는 판단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공격적이고 강력한 조치 없이는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길이 없다.
지자체들 가운데 특히 샌프란시스코가 취한 조치는 눈여겨 볼만하다. 병원과 요양원 그리고 교도소 등 ‘고위험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경찰 및 소방국 등 3만5,000명에 달하는 시 직원들에 대해 오는 9월15일까지 백신접종을 의무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종교적 혹은 의료적 이유로 백신접종을 받을 수 없는 직원들에게는 매주 바이러스 테스트 결과를 제출하도록 했다. 마치 종교적 병역기피자들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해 주듯 말이다.
물론 백신접종 의무화 조치에 모두가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자유를 앞세운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백신접종과 같은 ‘시민적 의무’는 ‘개인의 자유’와 배치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소중한 자유를 더 오래 지켜가는 데 필요한 파트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공공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애플파이만큼이나 미국적인 것”이라고 프린스턴 대학 역사학 교수인 줄리안 자일러은 지적한다. 그만큼 미국은 언제나 공공의 이익과 집단의 안위를 개인보다 앞세워온 나라라는 애기다.
현재 10여 개 주는 백신접종 증명서 사용을 금지하는 등의 방법으로 연방정부의 백신 캠페인을 방해하고 있다. 이런 주들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무지한 정치’가 ‘무지한 주민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결국 커뮤니티 전체의 안전을 저해하는 자해행위다.
이런 무지의 해악이 타인들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강제를 해서라도 그런 행위를 막는 것이 연방정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제는 지자체 차원을 넘어 연방정부가 코로나19 백신접종 의무화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법리논쟁과 소송 따위를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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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