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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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2021-07-20 (화)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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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도 초에 이민와서 이 나라에 사는 동안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는 나의 정체성이었고 어머니였으며 고향 이기도 하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어쩔수 없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그 숱한 애환 속에서도 생존의 길을 배우게 되는 것이 이민 초기의 삶이다.
그 어느 누구나 이민 초기의 삶이란 고달프고 힘들지 않은이가 어디 있으랴!
이민초기 나는 향수병에 걸려서 얼마나 지독하게 한국을 그리워 했는지 모른다. 포토맥 강가에 가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면 한국 생각이 나서 눈물 지은 적도 있었다. 나의 향수병을 달래준 것은 한국 신문이었다. 한국신문을 매일 읽으므로 모국어에 대한 향수를 달래었고 모국어로 예배 드리고 찬송 부르는 교회생활이 나의 향수병을 많이 완화 시켜 주었다.

세월이 가면서 이 땅에 뿌리를 내려 가는 동안 모국어도 중요하지만 더 갈급한 것은 영어로 대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영어는 내가 넘어야 할 과제이며 숙제 이기도 하였다.
다민족 다문화권이 모여사는 미국생활은 나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서의 안목을 갖게 해 주었다, 유럽인들은 자기 모국어 외에 2-3개의 언어를 구사하고 멕시코와 그 아래의 중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어를 말하며 페르시아어는 그 주변 국가들이 오늘날까지도 사용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가끔 이나라의 언어인 영어에 대해 이질감을 갖기도 하였는데 다 같은 사물을 보고 표현하는 방법과 언어가 우리와는 다르게 하였으며 또한 숫자개념이 참으로 정확하고 잘 정리되어 있고 인간의 감성에 대한 그네들의 표현은 나를 몇번이나 감동의 바다로 초대 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어느날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밤’이라는 시를 읽고 그 절절하게 사무치는 그리움과 고독을 노래한 그 사연들에 잔잔한 마음의 파도가 일렁이었으며…. 아! 나의 모국어…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운 비애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과연 이러한 서정시를 다른나라 언어로 번역 할 수 있을 까하고 자문해 보았다. 우리들의 국민시인 김소월도 마찬가지이다. 소녀 시절에 외웠던 ‘초혼’은 이 나이가 되어서도 그 귀절들이 생각나면 가슴이 미어 지도록 쓸쓸해 진다.

나의 자녀들이 이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나는 어머니로서 뿌리교육을 잘 시켰는지에 대해 회의감이 일어난다. 나의 자녀들은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남편과 함께 같은 병원에 근무 하였던 유대인 Dr,M 이 그의 아들 성인식 즉 ‘Bar Mithvah’에 우리부부를 초대해 주었다. 강단에선 그의 아들은 모든 회중 앞에서 유창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히브리어로 토라를 읽어 내려갔고 그의 옆에는 랍비가 서 있었다. 나는 그때 유대인들의 성인식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자기 모국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저 뿌리교육이 너무나 부러웠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저런 제도가 있다면 한국엄마들이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한글교육을 시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향이 있듯이 모국어가 있다. 그것은 자기의 정체성이며 소속을 알게하는 무언의 무기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수 많은 희로애락을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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