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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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 독수리

2021-07-19 (월) 이중길 / 중앙시니어센터 문예반 은퇴의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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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빛 자욱한 공간에는
악기 소리가 요란하다
줄을 세워 배열한 스크린 속
사슴, 독수리, 토끼, 질서 정연하다
옆에 앉은 노인의 동공 속에는
한 마리 검정 새가 보인다
무리들의 질서를 파괴하는 순간
괴성을 지르며 하강하는
날카로운 발톱이 보인다
기습으로 날아와
사슴의 목을 조르는 검은 독수리
노인의 손가락 사이에 금빛 돈이 떨어진다
박스를 삼키고 뱉는 소리
그녀 얼굴에 박힌 고뇌의 주름 사이로
순간의 기쁨이 쏟아져 내린다
그녀의 간절한 소망을 무시하며
오랜 시간 홀로 날아다니는 새
얼굴 좌로 우로 낄낄 거리며
공간 속 하늘을 헤집고 있다
얼마나 허리가 아픈지 그녀의 손은 떨리고
나이 만큼의 작동이 도달했을 때
독수리는 더는 날지 못한다
손때가 뭍은 그녀의 가방 속에는
한 마리 독수리가 외롭게 담겨져 있다
담배를 물고 안개 뿜어내며 사라지는 그녀
나이 보다 많은 확률을 기대하면서

<이중길 / 중앙시니어센터 문예반 은퇴의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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