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젠더 구분이 있는 한 로맨스는 언제 어디서나 꽃피운다. 인류 역사는 거슬러 가보면 남녀의 사랑으로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전쟁과 평화, 발전과 번영, 멸망과 비극의 부침이 이어져 오고 있다.
진정성이 있는 남녀의 사랑은 언제나 상상도 못할 무한 괴력을 갖는다. 상대를 행복의 경지로 이끌 수 있는 반면에 비탄, 불행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화해와 평화의 국면을 연출해 내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조물주(하느님)의 인간사랑이고 그 다음에 인간의 인간사랑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인류 역사 어느 시대를 살아왔든 인간은 모두가 진정한 사랑을 갈망했고 열광해 왔다.
어느 시절, 어느 세대 어느 곳에서나 사랑은 강렬하게 그리고 뜨겁게 기록돼 왔고 쓰여져 가고 있다. 그림, 음악, 소설, 설화, 조각 등등을 통해 태고부터 전래되어 오는 모든 사랑의 테마들에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함께 공감하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귀족과 천민,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낡은 제도 관행을 혁파하며 진정한 사랑을 이루어 낸 ‘춘향전’을 그 어느 누가 읽든 감동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세를 대표하는 작가 단테는 베아트리체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자신의 대표작 ‘신곡’에 담았다.
끝내 클레오파트라를 못 잊어 이집트로 돌아간 로마의 안토니우스, 당 태종의 양귀비를 연모하던 안록산은 반란을 일으켰다. 영국의 에드워드 8세는 대영제국의 왕관을 거부하고 미국의 이혼녀 심슨과 결혼하여 평생을 평민으로 살다 떠나 순수 사상의 표본으로 지금도 가슴을 울리고 있다.
악성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 모차르트의 ‘엘비라 매디간’ 그리고 브람스와 클라라, 절절한 사랑의 일화 등 이런 것들이 모두의 심금을 울리고 있지 않나.
수많은 시와 그림들에도 사랑의 영원성은 유유히 이어오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모딜리아니, 모네, 피카소 등등 손꼽히는 화가들이 애인들을 화폭에 그려 사랑을 찬미했다. 시인들도 마찬가지로 서구의 보들레르, 롱펠로우, 릴케, 테니슨을 떠 올리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백석, 김소월, 김춘수, 박목월, 박두진 등 다투어 주옥같은 사랑의 시를 남겼다. 지금도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의 시를 암송하곤 한다.
음미해 볼수록 사랑은 영원하고 고귀하며, 산간 계곡에 흘러내리는 한 줄기 청량한 물줄기처럼 인간사회의 순수 본령을 지탱해 오고 있다. 그러나 순수사랑의 세계가 물질주의 범람과 함께 묻어온 인간의 정신적 피폐 타락으로 수렁 속에 빠져 들어버렸다. 이른바 ‘미투’라는 것이 유행처럼 회자되다니 절망이 가로막는 느낌이다.
부끄럽게도 한국에서 대형 미투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현직 경기도지사로 대통령에 출마한 이재명 씨와 연예인 김부선 씨 사건의 향방이 주목된다. 얼핏 있을 수 있는 남녀 간의 범상한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리자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내용을 파고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격, 인권탄압 문제를 분명하게 짚어 낼 수 있다.
한 사람은 막강한 권력자이고 한 사람은 무명 연예인 소시민이다.
김부선은 이재명과 3년간이나 교제해 왔다고 주장하고 이재명은 두어 번 만났을 뿐이며 절대로 깊은 관계가 아니었다고 발뺌한다. 그러니까 서민 김부선이 감히 막강한 권력자에게 터무니없이 생떼를 쓰는 양상인데 뭔가 현실적으로 쉽게 수긍되지 않는 장면이다.
대법원은 ‘증거 불충분’이라며 이 사건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부인 ‘혜경궁’(김혜경) 셀폰 실종 해프닝, 형수 막말 욕설과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소동 등은 덮어 두겠다. 그러나 김부선 씨와의 사건은 한 억울한 서민을 구원한다는 사명감으로 계속 지켜보려는 것이다.
김부선의 변호인은 이재명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바지 내리기를 또 할 때가 되었다며 다시 재수사를 요청했다. 증거를 내놓지 않으면 무조건 패소해야 하는 게 실정법의 한계인가.
새삼 진짜 아이의 엄마를 찾아 준 솔로몬의 지혜가 아쉬워진다. 순수성이 증발된 ‘미투 사회’, 현대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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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