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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틴스, 노예해방일

2021-06-22 (화)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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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9일, 준틴스가 연방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갑자기 공휴일이 하루 더 생겨나자 좋기는 하지만 어리둥절하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준틴스 내셔널 인디펜던스 데이 법안’은 지난 15일(화) 연방 상원에서 만장일치 통과, 16일(수) 하원에서 415 대 14로 통과, 17일(목)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일사천리 제정 발효되었다. 그리고 첫 준수일인 6월19일이 토요일이라 전날인 18일 금요일을 휴일로 지키게 되었다. 공립학교와 연방공무원들은 17일 오후에 갑자기 지침이 내려와 바로 다음날 놀게 되었다며 뜻밖의 ‘횡재’에 환호하기도 했다.

6월(June)과 19일(Nineteenth)을 합친 ‘준틴스’라는 단어는 한인들에게 생소하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건 백인을 비롯한 타인종들도 마찬가지여서 갤럽조사 결과 미국인의 60%가 준틴스를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흑인사회에서 이날은 156년 전부터 축하해온 ‘독립기념일’이다. 우리가 35년의 일제식민통치에서 해방된 8월15일을 광복절로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물며 400년간 그보다 더한 학대를 견뎌온 흑인들에게는 그 감격이 훨씬 더할 것이다.

미국정부가 뒤늦게나마 이날을 연방공휴일로 지정한 배경에는 ‘준틴스 할머니’로 불리는 한 여성의 고집스런 투쟁이 있었다. 17일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맨 앞에서 지켜본 노인, 참석자 일동이 기립박수를 보낸 94세의 흑인운동가 오팔 리(Opal Lee) 여사가 그다.

텍사스 토박이 오팔 리는 12세였던 1939년의 준틴스 날을 잊지 못한다. 백인폭도 500여명이 몰려와 난동을 부렸고, 리의 집은 불태워졌다. 아버지는 총을 들고 나왔지만 수수방관하던 경찰의 협박에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었다.

그날의 경험이 리 여사를 교육자이며 운동가로 만들었다. 지난 40여년간 그녀는 전국 및 로컬 준틴스 단체들과 활동하면서 매년 이날이 오면 2.5마일을 걷는 행위로 준틴스를 기념해왔다. 2.5마일은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1863년 1월1일)이 텍사스 주 갤베스턴의 노예들에게 전해진 날(1865년 6월19일)까지 걸린 2.5년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남부연합 소속인 텍사스 주가 노예제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날 2,000명의 연방군과 함께 텍사스를 점령한 고든 그레인저 소장은 백인 농장주들에게 “남북전쟁은 끝났다. 모든 노예는 자유다”라고 선포했고, 그제야 마지막 노예 25만명이 해방되었다. 그리고 다음해부터 텍사스 흑인들이 축하행사를 가진 것이 준틴스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2016년 준틴스, 89세의 리 여사는 대장정에 나섰다. 포트워스의 자택에서부터 워싱턴 DC까지 1,400마일에 이르는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미행정부와 의회에 준틴스의 연방공휴일 지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1980년 이후 텍사스 주를 비롯한 미국의 거의 모든 주가 이날을 기념일이나 공휴일로 지켜왔지만 리 여사는 준틴스가 “텍사스 공휴일이나 흑인들의 휴일이 아닌 전 미국의 할러데이가 되어야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2016년 9월부터 2017년 1월까지 그녀는 매일 2.5마일씩 걸었고, 수많은 도시를 방문했다. 당초 목표는 10만명의 서명이었는데 대장정이 끝났을 때는 150만명이 서명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준틴스가 연방공휴일로 선포되면서 그녀의 평생 위업은 마침내 달성되었다.


물론 그녀 혼자만의 공로는 아니다. 지난 20여년간 흑인사회의 지속적인 운동이 있었고, 몇몇 하원의원들의 법제화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극도로 당파적인 현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과 BLM 운동의 영향이 컸다고 역사가들은 지적한다.

준틴스의 연방공휴일 지정은 이 사실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흑인들에 자행된 많은 ‘불편한 진실’들이 감춰져왔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100주년을 맞은 털사 인종대학살이다. 지난 6월1일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대통령으론 처음으로 털사 현장을 찾아 추모연설을 할 때까지, 많은 미국인들은 수천명의 무장 백인들에 의해 흑인 300여명이 살해되고 8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1,250채의 건물이 잿더미가 된 흑역사를 알지 못했다. 미 역사상 최악의 폭동이었지만 곧바로 덮이고 역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수 백인들은 학교에서 인종차별에 관련된 교육이 이뤄지는 일에 반대하고 있다. 준틴스 법안 서명 다음날인 18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분열적 메시지와 극단적 사고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려한다”고 비난했다. 아이들에게 미국은 인종차별이 만연한 ‘악한 나라’라는 내용을 가르쳐서는 안 되고, ‘애국적인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주장이다. 과거의 잘못을 모두 백인에게 떠넘기면 미국 역사를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예제와 인종차별 문제는 미국역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해야만 미국역사는 완성된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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