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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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2021-06-20 (일)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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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간의 외출, 제2의 고향이 된 2년이 부족한 반세기를 살았던 동부의 워싱턴을 방문하곤 귀로, 귀가에 오른다. 여러 종류의 여행이 있지만 좀 색다른 외출, 여행이다.
주 임무는 아내로부터 부여받은 것인즉, 4년간 세를 주었던, 우리들이 31년 살았던 정든 버지니아 집 상태의 점검과 필요시(분명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리까지 포함되는 좀 쉽지 않았던 임무였다. 이제는 인생살이를 정리, 처분할 나이다.

그래서 정들었던 집을 처분하려는 일 진행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는지 점검하는 것도 이번 여행의 중요 임무 중 하나였다. 만족할 수는 없어도 별 도리 없고, 세상 일이 어디 마음먹은 데로만 되나?
더불어 중간 중간 짬을 내어 그리웠던 옛 친구들을 만났다. 어떤 이들은 그대로 건강한 상태였으나. 많은 분들이 건강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 마음이 좀 아프다. 세월의 탓이런가.

이런저런 이유로 꼭 만나고 싶었었던 분들을 끝내 못 만나서 여간 아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97세의 대선배님을 1시간 반이나 연락 미숙으로 기다리시게 한 것은 송구함으로는 어림도 없는 무례를 저지른 것이 틀림없다. 오히려 나에게 무슨 변고나 있었는지 걱정하시는 문자 연락을 보내주셨다. 어떤 이는 그리 팔팔하던 사람이 몸이 불편해 운전을 그야말로 근처 동네에서나 하는 지경이라고 한다.


생각나는 말이 있다. 젊어서는 가고 싶은 곳, 먼 곳, 외국 포함 여행을 가급적 하고 늙어서는 동네에선 놀라고 하던 말이 그냥 우스개만은 아닌 게 사실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4년이라는 짧은 것 같은 세월의 흐름이 이처럼 많은 것을 변하게 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동년배의 친구들도 서너 명 유명을 달리했다. 허--참.

하여간 그래도 많은 일들을 수행했다. 그 중에 4년 동안 워싱턴을 비워 둘째 형님께 못했던 묘소 참배를 할 수 있었고, 최근 작고하신 존경하던 의료계 선배분의 유택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져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졌는지.
많은 분들을 만나고 운동도 함께 하고 미국 정착 후 몇 손가락 안에 들 회수의 대작을 하며 즐거운 서너 시간들을 두 번씩이나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수절을 하고 있는 홀아비가 된, 형제 이상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다만 산 동무들과 함께 산행을 못한 아쉬움이 크다. 등산화에 배낭과 침구까지 챙겨왔는데 말이다.

수절이 여성분들의 독점물만이 아닌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10여년 홀아비 생활이 제법 익숙해진 것 같은 친구가 마냥 애처롭게 생각된다. 절개의 사나이, 저 세상의 그 친구 부인께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는지?
이번 여행 중 느끼고 배운 것 중, 중요한 하나는 싸울지언정 부부가 함께 오래도록 함께 있어줘야 함이 아닐까 한다. 조강지처가 역시 최고라는 말을 되새기는 여행이었다면 누가 좋아하겠네. 누구 늦게나마 철들어 가네 그려, 허허!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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