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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스 데이에 생각하는 ‘아버지’

2021-06-17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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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칼폴리 포모나의 사우스 캠퍼스가 된 300여 에이커(3530 Pomona Bl. Pomona)에는 원래 발육장애인 시설인 랜터만 센터가 있었다. 지난 1927년 당시 퍼시픽 칼러니라는 정신박약아 수용시설로 시작된 이 곳은 6년 전 폐쇄되기 전까지 별도 보살핌이 필요했던 중증 발육장애인 1만4,000여명이 거쳐 갔다.

랜터만 거주자들의 평균 지능지수(IQ)는 10내외.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자해 전문가, 고무장갑이나 철사 등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는 걸식형, 틈만 보이면 간호사 등 주위 직원을 무차별 공격하는 폭력 성향의 행동 장애인도 많았다. 특히 이 센터의 병원은 지상의 마지막 곳이었다. 이미 농구공만한 머리가 한없이 커지고 있는 아이, 풀장 사고로 몇 년째 숨만 붙어 있는 아이, 갖가지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림처럼 누워 있었다.

랜터만 센터는 모성과 부성의 한계가 시험받는 곳이기도 했다. 당시 이 시설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수용자 중 어머니와 연락되는 사람은 60~70% , 아버지와는 대부분 연락두절 상태였다고 한다. 부모 어느 쪽과도 연결고리가 닿지 않는 무연고자도 많았다. 자식도 정도를 넘으면 부모, 특히 아버지들은 먼저 떠나 갔다.


친부모를 찾는 입양인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이 무렵 친자 확인소송까지 거쳐 친아버지를 찾아 낸 입양인의 이야기는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3살때 미국에 입양돼 지금은 네덜란드에 살고 있다는 그녀는 온갖 어려움 끝에 마침내 한국의 친부를 만나게 됐다. 생모가 누구인지는 그가 알고 있을 터-.

아버지는 딸과의 면접장에 마스크, 선글래스, 모자로 가린 채 나타났다. 경호원 2명도 대동했다.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려 달라는 딸에게 그는 묵묵부답, “모른다” “아니다” 등의 말만 되풀이 하다가 10분만에 자리를 떴다. 이 아버지의 이야기는 한국뿐 아니라 뉴욕타임스와 BBC 등을 통해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다.

아버지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얼굴을 한 야만’이란 어떤 것인가. 아버지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 일은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한 재벌의 말이다. “남자로서 지은 죄 말고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당했다. 그는 알려진 혼외자만 여럿 되는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는 ‘남자로서의 죄’속에 ‘아버지로서의 죄’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 구분이 없었기에 그는 당당할 수 있었다. 돈이면 아버지 노릇은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혼외자 인정은 한국 남자들에게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혼외 딸을 받아 들여 함께 살기도 했지만, 한 스웨덴 의사는 임종 직전 한국에 있는 혼외자의 존재를 고백했다. 6.25 때 의료진으로 한국에 파병됐던 그의 유품속에서 아들로 추정되는 2~3살짜리 한국 남자아이 사진도 발견됐다. 지난해 그의 스웨덴 아들이 지금은 60대 후반이 되었을 한국인 이복형을 찾아 나서면서 이 사연은 알려졌다.

아버지의 흔적을 더듬기 위해 남가주의 한인타운을 찾은 베트남 혼혈 ‘밀양 박씨’의 딸을 만난 적이 있다.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어머니와 남자 동생들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나라에 대해 냉담했지만 그 때 대학생이던 딸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절절했다.

이번 일요일(20일) 또 한 번 파더스 데이가 다가 온다. 아버지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들만 모아졌다. 묵묵히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많은 아버지들께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마더스 데이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되새기는 날이라면, 아버지들에게 파더스 데이는 아버지 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날이 됐으면 한다. 부족한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이므로 할 수 있는 말이 되겠다.


아버지가 공유하지 못하는 가족들간의 기억을 가진 이민가정이 너무 많다. 아버지는 바빴다. 무엇 때문에 저녁마다 늦고, 아이들과 캠핑 한 번 못가고, 무엇 때문에 아들의 중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가. 그 아버지만 아는 일이다. 어느 노철학자의 말처럼 인생에 ‘플레이 어게인’은 없다. 지나간 것은 지나갔을 뿐, 돌아오지 않는다. 허술했던 아버지의 시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자란다. 지나고 나면 어어 하는 새 다 큰 것 같다. 어느 정도 커지면 가까이 가도 아버지를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자녀의 나이에 따라 아버지의 역할은 다르다. 하지만 월급장이 아빠도, 자영업 아빠도, 목사 아빠도, 대통령 아빠도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젊었을 때 한창 자라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지난 뒤 아버지들의 마음 속에 회한처럼 파고드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바빴으나 이룬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면 회한은 더 깊고 날카로울 것이다. 더 나이 많은 아빠가 되기 전에 이것 하나만 확실하게 알아도 이번 파더스 데이가 헛되지 않을 것 같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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