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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고리’를 방치해선 안 되는 이유

2021-06-16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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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물리적 장벽이나 국경 같은 온갖 차단막도 바이러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초 중국에서 발생한 또 하나의 바이러스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코로나바이러스는 불과 2~3달 사이에 지구촌 곳곳을 덮어버렸다. 바이러스가 거의 빛의 속도로 확산된 배경에는 세계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다.

세계화에는 필연적으로 자본의 집중과 신속한 이동이 뒤따르게 된다. 팬데믹 확산 패턴에는 이런 세계자본의 흐름과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자본이 집중된 국가들에서 바이러스가 한층 더 기승을 부렸다. 중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 국가들이 바이러스의 주 확산지가 됐다. 세계화를 위해 구축된 시스템을 타고 코로나바이러스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자 대부분의 나라들은 서둘러 국경을 닫고 교류를 중단하는 등 역세계화 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그러나 언제까지 방어적인 역세계화에 머물 수는 없는 일. 세계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들이 다시 국경을 개방하고 물적 인적 교류를 재개하려면 전제조건이 따른다. 모두가 빠짐없이 안전한 상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바이러스는 언제든 또 다시 사악한 공격을 해 올 수 있다. 각국의 코로나19 백신 보급과 접종률을 놓고 불공정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선진국과 저소득 국가들 사이의 백신 접종률 격차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미국의 경우 18세 이상 가운데 접종을 완료한 사람의 비율이 15일 현재 54%에 달한다. 반면 많은 저소득 국가들은 아예 접종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백신 자체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게 이유다. 그래서 ‘그들만의 백신 잔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선진국들의 백신 독점을 “도덕적 재앙”이라고 강한 톤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런 비판여론을 의식했는지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저소득 국가들을 위해 총 5억 회분의 화이자 백신을 구매해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모처럼 국제사회 주도국으로서의 책임을 자각한 것 같아 다행이다.

이런 긍정적 신호들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낙관하기는 이르다. 듀크 대학의 글로벌 보건전문가인 안드레아 테일러 교수는 2023년 이전에 전 세계의 필요를 전부 충족시킬 만큼의 백신 공급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 전망한다,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얘기다.

백신 사업을 벌이는 게이츠 재단도 금년 말 선진국 접종률은 75%,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25% 정도에 머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런 예측조차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백신 격차는 심각하다.

뒤처진 국가들을 결코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가장 약한 고리가 전체 쇠사슬의 강도를 결정하는 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아무리 강한 고리들로 쇠사슬이 연결돼 있다 해도 한 군데가 너무 약하면 결국 그것이 전체 쇠사슬의 강도를 좌우하게 된다.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발견한 ‘미니멈의 법칙’ 역시 같은 원리다. 농작물에 아무리 영양소들을 충분히 줘도 필수적인 영양소가 단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수확량은 크게 줄어든다. 식물의 성장은 모든 요소들의 합이 아니라 양이 가장 작은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미니멈의 법칙‘을 코로나 백신에 적용해 본다면 아무리 선진국들의 접종률을 높여도 일부 국가들의 접종률이 너무 형편없다면 코로나19 퇴치 쇠사슬은 허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모두를 위한 백신의 공평한 접근이 확보되지 않는 한 코로나19는 결코 종식될 수 없다”는 WHO 사무총장 지적은 그냥 해보는 엄포가 아니다. 그래서 모든 국가를 위한 신속한 백신 공급은 같은 인류로서 도덕적 책무이자 동시에 바이러스 종식을 위한 가장 시급하고도 현실적인 보건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약한 고리의 법칙’은 한 사회가 정말 튼튼해지려면 왜 그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돕고 일으켜 세우는 것이 중요한지를 비유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주변 커뮤니티에서부터 지구촌에 이르기까지 서로 간에 얼마나 깊게 얽혀있는 존재들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코로나19 수습 이후에도 상생과 공존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쭉 이어져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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