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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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2021-06-14 (월)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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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미로 같은 것…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치매라는 무서운 질환이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섞갈리게 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밤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 이상으로 피할 수 없는 게 치매의 기억상실증이다. 친구의 어머니가 5년간 양로원에서 치매로 고생하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안타깝게도 기억력이 자꾸만 지워져가는 알츠하이머는 컨디션이 좋은 날은 딸만 알아보고 웃고, 그렇게 좋아했던 손주와 사위는 깜깜한 터널을 통과 하듯이 점점 뇌회로가 막혀져서 ‘누구냐’ 는 식으로 무표정이 된다. 열심히 간호해도 몸을 마음 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욕창이 생기고 의식이 희미해져 넘어지고 부상도 생긴다.

갑자기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자기 방식으로만 말하며 같은 이야길 반복하곤 하셨다.
나무가 봉오리를 맺어 예쁜 꽃을 피우고 잎이 무성하게 되며 그 잎이 황금빛으로 화려하게 물들다가 낙엽되어 떨어져버린 앙상한 나무가지에 찬란한 눈꽃이 피는 자연의 향기를 인식하는 건 세상에 뿌리를 견고히 내리고 있을 때 이야기이다. 이 세상에서 숨은 쉬고 있으나 정신이 저 세상으로 넘어간 상태인 중증 치매를 보면서 ‘인생무상’ 이란 단어가 자꾸 뇌를 스치고 지나간다.

사람의 영혼은 각각의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인 뉴런들과 그 뉴런들 사이의 빽빽한 연결로 이루어진 총합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 색을 인지하는 부분, 형태를 인지하는 부분, 사물의 역할을 기억하는 부분, 사물을 이용했던 경험을 떠올리는 부분까지 합해져야 사물을 의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식하는 각 부문을 총합한 것이 바로 영혼의식이라고 정신과 의사인 줄리오 토노니는 말한다.


정보가 통합되는 곳에 의식이 깃들기 때문이다. 눈을 통해 사물을 보고 귀를 통해 소리를 인식하는 등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소소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영혼이 단절되어가는 치매를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The Father’ 란 영화를 보았다. 앤소니 홉킨스가 ‘실제 치매환자가 아닐까’ 할 정도로 실감나게 연기한다. 엔지니어였던 자신을 탭댄서였다고 하는 등 정체성은 물론 교통사고로 죽은 작은 딸의 비애마저 기억에서 사라져서 딸이 찾아오지 않고 연락도 안 한다고 거듭 이야기하는 치매가 마음을 우울하고 답답하게 만든다.

옷입기도 힘들어하는 아빠를 사위는 양로원에 보내려 하고 딸은 지극 정성으로 돌보지만 그런 딸조차도 가끔씩 알아보지 못하는 비극영화이다.
치매는 집중력, 주의력, 언어능력, 문제 해결 및 시각적 인식이 감소되어 감정을 통제 못하고 성격 변화가 일어나는 증세를 보인다. 분노와 무력함, 점점 짙어지는 불안, 고독, 공포속에서 삶의 뿌리인 어머니를 몹시 그리워하며 어린아이처럼 애처럽게 우는 장면은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

치매는 바람같은 세상에서 화석처럼 피어오르는 소중한 사랑의 추억조차도 미로를 헤매게 만든다. 행복한 노후생활을 염원하는 우리 사회에서 치매의 공포는 섬뜩한 생각을 하게한다. 의술이 더욱 발달되어 빠른 시일내에 치매예방약과 치료제가 개발 되어서 치매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대단한 역사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한다.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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