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어머니날은 5월 9일이었다. 한국은 어머니날 대신 어버이날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대부분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먼저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가 벌써 이십여 년이 가까워 온다. 어머니를 회상할 때마다 늘 아버지 그늘에 갇혀 마음껏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던 생각이 난다.
집의 문짝이 흔들리도록 아버지의 큰소리에 눌리어 살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여자의 운명이랄까, 부덕(婦德)이랄까, 참고 순종하는 길이 미덕으로 알고 숨죽이며 살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중심을 잡기도 힘든 처지에 애면글면 자식을 뒷바라지에 온몸을 던진 분이다. 비록 어머니날을 맞이해서 그분의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 은혜에 대한 백분의 일이라도 보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바랜 앨범을 들추듯 어머니의 자취를 또한 느낄 수 있는 곳이 한국의 재래시장이다.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서 어머니가 불현듯 그리울 때 그곳으로 일부러 발걸음을 옮긴다. 골목길의 작은 점포와 행인들이 바삐 오가는 시장 어디에선가 어머니의 체취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어머니의 구부정한 그림자가 먼저 달려와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무엇보다 어릴 때 일이 잊히지 않는다. 그 당시 어머니는 충청도 청주 오일장에 가는 날이 아버지로부터 해방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쪽찐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얼굴엔 분도 바르며 생기가 났다. 오일장 날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아버지한테 허락받아 나가려 했다.
집을 떠나 장터로 가는 어머니의 발걸음은 여느 때 보다 빨랐다. 재래시장엔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이 뒤엉겨 떠들썩하다. 집을 나선 어머니는 저잣거리의 어디, 어디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을까.
우선 푸줏간에 들러 보았다. 가난한 농촌에서 고기라고는 구경하기 어려웠다. 붉은 조명의 진열장 속에 소고기, 돼지고기가 먹음직해 보이고, 도마 위엔 썰다 배인 고기 냄새가 가슴을 파고든다. 가족을 위해 얼마나 소고기를 사고 싶었을까. 푸줏간에는 어머니의 코 그림자가 설핏하게 나타난다. 돈이 없어 소고기는 못 사고, 코만 남겨놓고 돌아섰는가 보다.
다음으로 신발가게에 들렀다. 여러 가지 진열된 신발 중에서 운동화와 고무신이 예쁘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쭈그리고 앉아서 운동화 한 짝을 집어 들었다. 그 운동화에서 어머니의 손때가 보이는 게 아닌가. 어머니만의 독특한 내음이 고스란히 풍겨왔다. 변변치 못한 양말에 헤진 고무신을 신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 생각이 났을 것이다. 운동화를 사고 싶어 여러 번 만졌다 놓았다 하다가 그냥 나왔을 게 뻔하다.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몇 발짝 걸음을 떼는데 건너편 유리창 안으로 한복집이 눈에 들어왔다. 시골에서는 곰삭은 옷이 익숙하다지만, 어머닌들 유행하는 한복 한번 입고 싶은 바람이 없었을까. 당신 바느질 솜씨가 좋으니 옷감만 있으면 옷 한 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켜켜이 쌓인 색색의 옷감이 내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이것저것 만지다가 값을 물어보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을 게 분명하다. 이 벽 저 벽에 어머니 눈동자가 떠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식들을 키우고 보니 어머니가 평소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못하고 살았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모난 세파에 둥글게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가슴이 미어질 때면 남을 원망하지 않고 응어리를 속으로 삭이며, “여자가 죽으면 뼈가 새까매질 껴”라는 말을 자주 되뇌었다.
어머니의 검은 뼈가 우리 네 남매가 자라나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살아가면서 어머니의 가르침을 곱씹을 때가 있다. 어머니의 긴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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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원 / 맥클린,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