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걷다 보면 앞마당을 절수형 정원으로 바꾼 집들이 눈에 띈다. 잔디 대신 미니어처 사막 풍경이 펼쳐져 있다.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몇 년전 가뭄이 심각할 때 당국은 보조금을 지원하며 물이 적게 먹는 정원으로 바꿀 것을 권장했다. 번거로웠겠지만 그 때 잔디밭을 갈아 엎은 것은 앞을 내다 본 결정이 됐다. 단기간에 해결될 가뭄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뭄은 물론 비나 눈이 적게 오기 때문에 생긴다. 강수량이 적어서 겪게 되는 이런 가뭄은 기상학적인 가뭄이다. 가뭄으로서는 입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5월 강수량이 평년의 10%미만이었다는 캘리포니아 등 미 서부 지역의 가뭄은 이 단계를 넘어섰다.
계곡이나 강의 물줄기가 마르고 수 백만 명이 식수원으로 삼는 콜로라도 강, 레이크 미드의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처음 물 부족 사태가 선포되리라는 전망이다. 토양이 마르는 가뭄은 농업 가뭄으로 분류되는데 미 서부 지역의 토양 습도는 지난 120년래 최저치로 관찰됐다.
이런 가뭄은 생태적인 가뭄으로 이어져 북가주의 연어 양식장들은 올해 처음 새끼 연어들을 강 대신 바다에 바로 풀었다. 강의 수위가 너무 낮아 수온이 올라가면서 치어가 살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회유성 어종인 연어는 산란기에 태어난 강으로 찾아드는데, 모천이 없어져 어디로 갈 것인가. 생태 교란의 문지방을 넘은 가뭄은 연어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로키, 시에라 네바다, 캐스케이드 산맥 등에 쌓인 눈이 녹아도 흐를 수 있는 물이 많지 않다. 바짝 마른 땅이 먼저 빨아 들여 갈증을 해소하기 때문이다. 지하수가 말라 매년 우물을 6.5피트(2미터) 정도 더 깊이 파야 하는 곳도 있다.
UC와 보이즈 주립대학 교수들의 공동조사에 의하면 지금 미 서부의 84%는 가뭄 상태로 분류되고 있다. 아이다호 주의 목장주들은 가축을 내다팔고, 유타 주는 농업 용수를 많이 사용하는 농가에 벌금을 물린다. 캘리포니아는 58개 카운티 중에서 41개 카운티에 가뭄 비상을 선포했다. 온난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은 서로를 부추기며 지구를 건조시키고 있다.
가뭄의 뒤끝은 심각하다. 산불 악화도 가장 큰 걱정거리중 하나. 지난해 각각 주 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을 경험한 콜로라도와 캘리포니아의 문제는 산불이 점차 높은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로키 산맥의 산불은 수목 한계선인 해발1만2,000피트(3,650미터)까지 올라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 높은 곳에는 곰도 살지 않는다. 먹이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태울 것도 없다.
지난 1984년 후 피해면적 1,000에이커 이상의 산불을 조사한 결과 해발 8,200피트(2,500미터) 이상 고산에 번진 산불이 2000년대 들어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원래 높은 산 불은 드물었다. 고산일수록 쌓이는 눈 때문에 수목의 수분 함유량이 높기 때문이다. 태우기에는 너무 젖은 나무인 것이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산불은 평균 고도를 800피트(250미터) 정도 높였다. 산불의 고도 상승은 계속되는 가뭄이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도 어느 지역에 살든 자연 재해를 피하기는 어렵다. 어디가 더 안전한가는 큰 의미가 없다. 동부 해안은 해마다 허리케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동부쪽의 남가주라고 할 수 있을 플로리다는 ‘허리케인의 수도’로 불린다.
중부 대평원은 토네이도가 지나가는 길이다. 텍사스 북부에서 오클라호마, 캔사스를 거쳐 캐나다 쪽으로 올라가는 길목과 그 주변은 5등급 허리케인 정도인 시속 160마일의 토네이도가 엄습하기도 한다. 나무 뿌리와 신호등을 뽑고, 차를 수 백 미터씩 날려 버리는 토네이도가 닥치면 제일 아래 층, 창문없는 방에 웅크려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하지만 바람이 집까지 날려 버린다면 대책이 없다. 물 난리를 겪으면 물이, 화재를 당하면 불이 제일 무섭다. 이런 곳에서는 바람이 가장 무서울 것이다.
다시 산불 시즌을 맞는 캘리포니아는 아무래도 자연재해의 목록에 지진에다 산불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울창한 숲이 있는 오리건도 지진 대비용품 대신, 산불 대피용품울 꾸려 놓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유타의 주지사는 가뭄 극복을 위한 기도 요청을 했다가 무슨 기우제를 지내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46억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의 생성과 변화과정을 보면 지구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생명체에 최적인 지금과 같은 환경으로 변화해 왔다. 이번 팬데믹 정도의 재앙은 온난화로 인한 지구촌의 기후 변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은 벌써 나왔다. 이런 지구를 탈출하는 공상과학적인 이야기도 계속되고 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아무리 시설좋은 화성 정착촌이라고 한들 지구만 하겠는가. 태양계의 유일한 푸른 별인 지구, 1년 365일이 지구를 돌보고, 지키는 날이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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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