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태어날 때 부모를 만납니다. 그리고는 형제, 자매들을 만납니다. 친구들을 만납니다. 선생님들을 만납니다. 배우자를 만납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만납니다. 목사를 만납니다. 교우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만남의 끝은 헤어짐입니다. 언젠가는 헤어집니다. 부모와, 자녀들과, 형제, 자매들과 헤어지게 됩니다. 선생님들과 헤어지게 됩니다. 배우자와도 헤어집니다. 일하던 동료들과도 헤어집니다. 목사와도 교우들과도 반드시 헤어질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혹시 우리는 마냥 같이 있을 것이라고, 늘 다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물론 어쩌다가 이 세상에서 헤어졌다가 만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그 이상 반가운 것이 없겠지요. 그리고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헤어지더라도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믿지 않는다면 영원히 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헤어질 때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겨지고 싶은가요? 물론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어서 못 기억할 때가 옵니다. 그 때야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떤 사람으로 생각되어 지기를 바라는지요?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일생을 마친 뒤에 남는 것은 당신이 모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뿌린 것입니다.’ 성경에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뿌리고 있나요? 무엇을 심고 있나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어느 집사님의 고별예배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슬퍼했습니다. 그는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많이 배운 분도 아닙니다. 제자들을 많이 가르친 스승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이유는 그를 만났던 분들은 그에게서 사랑을, 선함을, 자비와 긍휼을, 겸손과 온유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6월에는 아버지의 날이 있습니다. 저도 육신의 아버지와는 헤어진 지가 벌써 12년이 넘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분들에게 아버지는 어떤 분으로 각인되어 있나요? 앞으로 자녀들과 헤어질 날이 올 아버지들은 어떤 아버지로 기억되기 원하시나요? ‘아버지의 눈으로’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1절만 나눕니다.
“시작할 때부터 당신이 첫째입니다. 그는 당신이 가장 안 좋을 때도 사랑합니다.
아버지로서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입니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는 당신이 꿈꾸기 전에 그것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처럼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줄 거에요.
나는 아버지의 눈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그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그는 당신을 끝까지 돌보게 됩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듯이 이 땅의 내 아버지의 눈을 통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봅니다.”
정말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통하여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그 자비와 긍휼하심을, 그 선하심을, 온유하심을 보고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여 아름다운 것들을 뿌리기 원합니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잡초를 제거하여 싹이 나고, 줄기 나서 그들이 자라서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중에 헤어지더라도 아버지의 아름다운, 멋진 모습을 기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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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일 / 목사(가든교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