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들이 1년3개월 동안 닫았던 문을 활짝 열고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물론 아직도 조심스런 코로나 방역 때문에 티켓을 사전 예약해야하고, 관람 때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 라크마(LACMA), 더 브로드, 모카(MOCA), 해머, 스커볼 등 남가주의 주요 뮤지엄들은 모두 비슷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래도 미술관들이 건재한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반갑다. 팬데믹 동안 문화예술계는 어떤 분야보다 존폐가 불확실하여 암울한 전망이 오갔었기 때문이다. 작년 봄 미국뮤지엄연맹(AAM)은 미국 뮤지엄의 3분의 1이 폐관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뮤지엄의 95%가 문을 닫았는데, 국제미술관학회는 10개 중 1개가 다시 문을 열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1년이 지난 2021년 4월, AAM이 다시 미술관 관장 1,000여명을 여론조사 했을 때는 85%가 폐관 위기가 아니라고 답했다. 15%만이 “심각한 폐관위기” 또는 “미래를 알 수 없다”고 했으니 예상보다 선전한 셈인가. 그렇기는 해도 15%가 폐관위기라는 것은 미국에서 5,000개 이상의 뮤지엄이 사라질 수 있음을 뜻한다. 그 하나하나의 예술적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잃어버린 1년의 타격은 컸다. 팬데믹 기간 중 문화예술계의 손실액은 총 150억달러에 달한다. 뮤지엄의 4분의 3은 수입이 평균 40% 줄었고, 절반 이상이 직원을 감원했다.
이 때문에 작년 초 미술관관장협회(AAMD)는 비상조치로 ‘뮤지엄의 소장품 판매금지’ 규정을 임시 정지시켰다. 이것은 뮤지엄이 운영비 충당을 위해 컬렉션을 팔지 못하도록 한 규정인데, 이를 완화하자 곧 여러 미술관들이 소장품을 경매에 내다팔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난 2월 미국 최대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소장품을 팔아 운영비로 쓰겠다고 밝히면서 미술계가 격렬한 찬반논쟁에 휩싸인 것이다.(메트의 팬데믹 손실액은 1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미국박물관의 롤모델인 메트가 이렇게 나오니, 재정난에 봉착한 수많은 박물관들이 같은 유혹을 토로하며 이 조치를 영구화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뮤지엄의 소장품 판매는 우선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뮤지엄 컬렉션은 공공자산이므로 보존돼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장기적으로 미술품 기증과 기부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특정미술관에 기증한 작품이 언젠가 경매에서 다른 곳에 팔아넘겨질 수 있다면 누가 기증을 하겠는가? 또 미술관이 재정난을 겪을 때마다 소장품을 팔아 충당한다면 누가 기꺼이 후원금을 내겠는가?
미국의 거의 모든 뮤지엄은 컬렉터들이 기증한 예술품으로 세워졌고, 후원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돼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현재 미술애호가들은 메트가 소장품을 팔지 말고 억만장자 이사들이 재정손실을 지원하라고 촉구하는 서명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편 팬데믹 동안 암울한 소식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1년 넘게 전시장이 텅 비게 되자 이를 기회로 대대적인 개보수작업에 돌입한 곳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파리의 루브르 뮤지엄이다. 하루 방문객이 4만명에 이르는 이 세계최대의 박물관은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문을 닫은 기간 동안 큐레이터와 복원 및 보존가 등 전문가들이 동원돼 인벤토리, 복원작업, 천정 및 바닥공사, 실내장식 청소를 실시했다.
평소에는 매주 화요일 휴관일에만 할 수 있던 일을 작년 10월부터 250명의 각 분야 장인들이 주 5일 풀타임으로 미화작업에 돌입, 5배나 빠른 속도로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천 점의 회화 액자에서 먼지를 닦아내는 단순청소도 있었지만, 고대이집트 유물실을 완전히 새로 단장하는 어려운 작업도 끝냈다. 4만여 개의 작품설명판이 교체됐고, 루이14세 방에서는 떨어져나간 금박장식들이 새로 입혀졌다.
피렌체의 ‘메디치 채플’에서도 특수 청소작업이 이루어졌다. 르네상스시대를 이끈 메디치 가문의 가족 묘실은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석관의 조각들로 유명한데, 세월이 흐르면서 수없이 카피를 뜨느라 입혔던 회반죽 석고 때문에 탈색과 함께 잔여물, 더께, 얼룩이 심해졌다.
그런데 복원가와 생물학자들이 팬데믹 동안 ‘아주 특별한 청소도우미’를 사용해 이 조각들을 새것처럼 만들었다. 미켈란젤로가 즐겨 사용했던 카라라 대리석을 좋아하는 박테리아 8종을 채플에 퍼뜨린 것이다. 이 미생물들이 쓰레기를 모두 먹어치운 결과는 놀라울 정도라고 한다.
당장 루브르와 메디치 채플에 가볼 수는 없지만, 우리의 로컬 뮤지엄들도 그 못지않게 새로 단장했을 것이다. 이제 1년3개월 동안 황폐했던 우리의 영혼을 위로하고 회복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미술관은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치유의 공간이다. 티켓을 사고, 멤버십을 들고, 뮤지엄 카페에 가고, 기프트 샵에서 샤핑하면서 뮤지엄의 회생을 도와야겠다. 뮤지엄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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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