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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기원

2021-06-08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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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처음 체계적으로 설명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다. 20대에 갈라파고스 군도에 간 그는 비슷한 새가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한 채 여러 섬에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새들은 조상이 같으며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다른 형태를 갖게 된 것이란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후 30년 가까운 연구를 거쳐 나온 것이 1859년 출간된 ‘종의 기원’이다.

다윈 주장의 핵심은 소위 ‘자손의 변모’(descent with modification)라는 것이다. 같은 부모 밑에 태어난 자손이라도 능력과 모양이 조금씩 다른데 이중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손은 계속 씨를 퍼뜨리고 그렇지 못한 자손은 도태되고 만다. 이런 변화가 몇십대, 몇만대를 계속해 일어나면 결국은 다른 종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형제 자매 간에 약간씩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차이가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이면 같은 종이라고 부를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 또한 자명하다. 직계 자손 사이에 존재하는 개체차와 같은 종내 존재하는 변종, 그리고 다른 종 사이의 종차는 모두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다윈에 의해 진화의 원리는 밝혀졌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경로는 멘델의 콩 실험을 통해 얻어진 유전자라는 개념을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알아내면서 본 궤도에 올랐다. 오늘날 가장 유망한 연구 분야의 하나로 손꼽히는 유전학이 이를 발판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유전학자들은 1976년 처음으로 바이러스의 총 염기서열(게놈)을 밝혀낸데 이어 2007년에는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자인 제임스 왓슨의 게놈 파악에 성공했다. 이제는 염기서열의 어떤 부분이 어떤 형질과 관련이 있고 어떤 유전병을 유발하는지는 물론이고 지구상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인종 및 부족간의 친소 관계와 고대 인류의 이동 경로까지 파악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두 개체의 염기서열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재면 이들이 속한 그룹이 얼마나 떨어져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유전자와 진화에 관한 지식이 작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원에 관한 새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지금까지는 박쥐들 몸에 붙어 살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시장을 통해 인간에게 전파됐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했다. 과거 예를 볼 때 박쥐에게서 바로 인간에 전염되는 경우는 드물고 중간 숙주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우한 시장에서 처음 감염된 사람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유출설이다. 올초 탐 카튼 연방 상원의원이 그곳에서 개발 중이던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비하되던 이 주장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그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COVID-19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다.

많은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같은 코로나 계열인 SARS나 MERS 바이러스가 인체에 들어와 수많은 변이를 계속하며 악성으로 바뀐 것과는 달리 이번 COVID-19 바이러스는 인체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치명적이며 전파력이 강한 특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COVID-19 바이러스 DNA중 CGG-CGG 서열이다. 이 서열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중에는 발견된 적이 없다. 반면 연구소에서 ‘독성 강화’(gain of function)를 유도할 때는 이 서열을 유전자에 집어넣는다. 세계를 공포에 빠지게 한 COVID-19 바이러스 유전자에 이 서열이 들어 있다는 것은 이것이 자연산이 아니라 연구소 산이라는 명백한 증거라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전담 조사할 위원회 구성을 지시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유출이 실제로 일어났더라도 외국 기관이 직접 조사할 권한도 없고 중국 정부가 이를 인정할 가능성도 제로기 때문이다.

유전학은 이미 DNA 검사로 수많은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보다 포괄적이고 심도 있는 조사를 통해 코로나 사태의 진상도 밝혀내기를 기대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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