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열린 법무부 주최 국적법 개정 공청회에서는 두가지 안건을 다루었다. 첫번째는 한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영주권자의 미성년 자녀들이 간단한 신고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고, 두번째는 해외동포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를 신설하는 법이었다. 이 두가지 안건은 서로 논리적 모순이며 정책의 일관성 부족 사례에 해당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첫번째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수혜 대상자 중 약 95%가 중국 국적을 가진 중국동포(조선족) 등 중국인이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국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31만이 넘었다. 이들의 자녀에게 쉽게 한국 국적을 준다고 하니 나라 팔아 먹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의 자녀에게 한국 국적이 부여된다면 한국에서 복수국적제도를 이용하여 좋은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고는 군대에 가야할 나이가 되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으로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들이 병역의무를 다하면서 한국을 조국으로 여기고 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권리를 취득하는 과정은 까다롭고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번 준 권리를 도로 뺏는 것은 어렵고 권리를 실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행정력이 들기 때문이다. 하물며 한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혜택의 집합체인 국적을 주는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외국인에게 국적을 주는 것을 매우 까다롭게 하고 투자를 요구하든지 자격을 요구하든지 자국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시민권을 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혜택만 받고 의무는 회피할 수도 있는 외국인들 자녀에게 부모가 한국에 영주권자로 5년만 살면 바로 한국 국적을 주겠다니 황당한 노릇이다.
반면에 두번째 개정법안은 재외동포 2세인 선천적 복수국적자에게는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를 만들어 한인 2세들의 성공적 거주국 정착을 돕기는 커녕 국적이탈 의무라는 족쇄를 여전히 채우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국적을 포기하는 절차는 간소하게 운영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여러 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거주하지 않는 나라의 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전적인 권리이고 국가가 관여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이 무국적자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기 때문에 무국적자가 되지 않는다는 증빙만 확실하다면 간단한 신고로 국적을 이탈하게 해주는 것이 대부분의 나라의 관행이다.
한국처럼 국적이탈을 하기 위해서는 출생신고부터 하라고 온갖 까다롭고 복잡한 서류를 요구하고 처리 과정을 1년 6개월 넘게 끄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이는 재외동포들이 한국 국적을 이탈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한국만큼 병역의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자와 여자가 모두 군대에 가는 이스라엘도 외국에서 태어나거나 장기간 거주하는 사람은 간단한 신고로 국적이탈을 하고 거주국에서 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이스라엘 국적법 덕분에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디아스포라(흩어진 백성)가 가능했다.
한국의 국적법은 분단 상태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과도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법무부는 거꾸로 하고 있다. 까다롭게 해야 할 국적 취득 절차는 간소하게 하고, 간소하게 해야 할 국적포기절차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게 까다롭게 한다.
재외동포 보다는 중국인을 먼저 우대하는 국적법 개정안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한국사회의 방향성과도 역행한다.
복수국적 시비로 한인 2세가 미 공직이나 정계에서 사퇴하는 불상사가 터지게 되면 잘못된 법을 만든 자들을 역적으로 몰고 서둘러 법을 바로 개정한다 하더라도 그 때는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법무부는 6월 7일 입법예고기간이 끝나는대로 최종 수정안을 다시 만들어야 하며, 국회 차원의 공청회를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국가의 장래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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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준 /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