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에세이] 부모를 용서할 수 없는 당신께
2021-05-27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친구들은 아이를 낳고 비로소 부모 마음을 이해했대요. 근데 저는 아니었어요.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웠죠. 첨 느껴보는 사랑.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그런 사랑. 그러면서 제 부모에 대한 원망을 확인했어요. ‘자식이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왜 부모는 나를 미워했을까? 왜 나를 학대했을까? 상처만 준 부모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은 늘 싸우셨어요.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매일 술심부름을 시켰어요. 밤마다 술에 취했고 술상을 엎었고 엄마에게 행패를 부렸고 거울이 부서졌고 티비가 날아갔어요. 울면서 그걸 말리는 저를 아버지가 집어던져서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기도 했어요. 중학교 들어간 다음에는 아빠가 엄마 몰래 저를… 밤마다… (눈물)… 떠올리려니까 너무 괴로워요… 술을 사러갈 때마다 술 안에 독약을 타는 상상을 했어요. 다음날 아침이 되면 엄마는 맞아서 퉁퉁 부은 얼굴로 온갖 저주 담긴 욕을 하면서 저를 때렸어요. 그런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부모님 비위를 거스를까봐 매사에 조바심을 냈던 기억이 나요.
--그러셨군요. 비위를 거스를까봐 조바심을 냈던 기억이 나시는군요. 그 기억을 떠올리는 지금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살아오는 동안 내내 부모가 싫고 미웠지만… 불쌍하기도 하고, 부모니까 용서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안 되네요. 그분들도 그땐 어쩔 수 없어서 나한테 그랬을 거라고… 악한 사람은 아니라고… 부모님도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대요. 교육도 잘 못 받으셨고… 그래서 그러셨겠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어쩌다 친정에 가보면 두 분 다 기운이 많이 빠지셨더라고요. 그걸 보면 한편 측은하죠. 겉으론 아무 말도 안 하지만 속으론 부모를 죽도록 미워하는 제가 나쁜 사람 같아서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요. 지나간 일을 잊을 수 있으면 제일 좋은 거겠죠? 하지만… 돌아서면 다시 떠오르고 용서가 안돼요. 지금이라도 ‘미안하다’ 딱 한마디만 해주면 제 마음의 상처가 나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정말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과거를 잊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뇌의 두 가지 다른 길입니다.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상대에게 보복이 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는 ‘원망을 억눌러 표현하지 않기’가 아니라 기억의 제목을 바꾸는 일입니다. 누구도 과거 일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건에 대한 나의 해석은 바꿀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사과를 들은 뒤에도 자신 안에 그대로 상처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더 큰 무력감에 빠집니다. 부모에게서 사과를 끌어내려고 몸부림치는 동안 자녀는 부정적인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나는 결국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는 자존감 상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부모의 사과를 받아내려는 내가 나쁜 놈’이라는 자책입니다. 부모의 사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부모를 미워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서 자신을 책망하는 것으로 감정을 대체시키지 마십시오. 부모를 이해해주려는 노력 대신,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부모의 행동을 대신 변명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 변명으로 위로를 삼지 마십시오. 자기중심적인 부모는 때로 헌신적인 자식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패턴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자식이 맞서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상담에서 부모를 나쁘게 말하고 나니까 제가 너무 못된 자식인거 같아요.
--못된 자식이 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애쓴다면 부모가 당신을 학대한 것 이상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영향력 밖으로 자신을 대피시키십시오. 분노와 원망의 대상에게 집중하지 마시고 자신에게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착한 사람’ 노릇을 멈추면 용서를 선물로 얻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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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