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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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땅

2021-05-24 (월) 서기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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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다시 찾아온 극심한 가뭄으로 곳곳에서 가뭄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있다.

지난 월요일 소노마와 나파 지역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아! 나파밸리다.” 차창 너머로 다 타버린 산들과 들판 그리고 타다 남은 집들이 보였다.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과 포도원의 조화로운 풍경으로 북가주 명소였던 곳, 그러나 지금은 작년에 이 지역에 생겼던 큰 산불로 인해 낯선 풍경들이 만들어진 곳이다.

까맣게 타다 남은 나무들과 누렇게 말라있는 들풀들은 바람이 조금만 세차게 불면 금방이라도 다시 불이 붙어 훨훨 탈 것만 같다고 남편과 이야기했다. 그때 라디오에서는 가뭄 비상사태 선포에 관한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가뭄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이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지금이 심각한 가뭄 상태라는 것을 잘 못 느끼며 살아간다. 별생각 없이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오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내릴 수 있고, 매일 샤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식기세척기, 세탁기 등을 자주 사용하며 생활한다. 심지어 집 앞과 도로가 잔디밭에 물을 줄 때 좀 넘쳐흘러도 대부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우리가 누리는 이런 편리한 생활과는 상이하게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 농촌, 산촌과 어촌을 살펴볼 수 있다면 오늘 가뭄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다.

달리는 차에서 보는 바닥이 보이도록 말라버린 농업용수로, 바람에 흙먼지를 일으키는 마른 땅, 그리고 산불을 일으킬 만큼 너무 말라버린 들풀과 나무들, 물고기가 살 수 없을 만큼 색이 변해버린 호수, 강과 바다는 지금 가뭄의 심각함을 입증해 보였다. 이런 낯선 풍경 앞에서 우리 모두는 물이 솟아날 구멍을 찾아야 한다.

마른 땅에서 뿌리는 더 깊게 내리는 법이다. 재앙과 기회는 생각의 종이 한 장 차이이다. 극심한 가뭄이라는 자연의 재해를 단지 재앙으로만 생각할 것인지 지금 찾아온 가뭄 속에서 작은 생활습관 물 절약을 실천하여 삶의 뿌리를 깊게 내리는 기회로 삼을 것인지의 차이이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나와 남편은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하는 아들을 보며 요즘 심각한 가뭄이니 샤워에 집중하고 빨리 끝내라는 잔소리로 물 절약, 생활 실천을 통해 삶의 작은 뿌리를 조금 내렸다.

<서기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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