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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과 선천적 복수국적자, 헷갈리는 이유

2021-05-23 (일) 전종준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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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무부의 선천적 복수국적에 대한 ‘공청 없는 공청회’에 불참을 선언하고, 서명 운동을 시작한 이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켜 미 전역에서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7년 걸렸다. 원정 출산과 이민 출산을 구분하지 못한 ‘홍준표 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하면서 가장 넘기 힘들었던 장벽은 바로 ‘국민정서’ 내지 ‘기회주의적 병역면탈 방지’라는 근거없는 논리 주장 때문이었다. 이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에 대한 현실과 법적 이해의 무지 또는 부족 탓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유승준과 선천적 복수국적자를 헷갈려하는데 쉽게 풀어보면, 유승준은 한국 태생, 후천적 시민권자가 됨과 동시에 한국 국적이 자동 상실된다. 반면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미국 태생, 한국국적이 자동 상실되지 않는데 이것이 국적법의 모순이다.
원정출산과 병역 기피자를 막기 위한 홍준표 법이 포플리즘 정치에 이끌려 병역 자원이 아닌 이민 출산자인 선천적 복수국적자에게 부당한 국적이탈의무를 부과한 것을 4전 5기로 증명한 결과 마침내 2020년 9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결정으로 해외동포는 잠시나마 희망을 가지고 기뻐했는데, 이것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에 불과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법무부는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에 관한 입법예고를 하고 5월 26일 일방적인 공청회를 추진하고 있어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더욱이 이번 공청회에서는 국회 법사위 의원의 축사가 예정되어 있어 혹시 국회에서 법무부 안대로 통과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을 불러 일으켜 나는 공청회 불참을 선언했다.
무릇 공청회는 국적 당연 상실제 또는 국적유보제 등 다양한 대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토론장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는 이를 무시하고 침해된 권리를 구제할 수 없는 탁상행정 카드만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80% 이상의 미국태생 한인 2세는 국적이탈의무를 알지 못하고 있으며, 비록 안다고 해도 복잡한 국적이탈 신고를 포기하거나 혹은 출생신고를 요구하기에 복수국적 보유 이력으로 인한 불이익을 고려해 국적이탈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불합리한 국적 이탈에 소요되는 기간이 1년 6개월 이상 걸리는데, 코로나 사태 중에 법무부의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를 시행하게 되면 과연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계나 공직 진출시 신원조회를 할 때, 보안 질문 중 “당신은 복수국적을 보유하거나 보유한 적이 있습니까?”에 답을 당장 해야 할 마당에 어느 세월에 법무부의 예외적 국적 이탈 허가를 받으란 말인가!
설령 국적이탈을 허가해 준다고 해도 국적이탈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람들에게는 인권침해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5차 헌법소원의 청구인이었던 크리스토퍼 멀베이 군의 미국인 아버지처럼 부모 중 한 사람이 외국인이거나 혹은 사망했을 경우 국적 이탈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부모가 이혼하여 아버지 행방을 알 수 없어, 출생신고와 국적이탈 신청 및 부모의 혼인신고, 이혼 신고 등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서류에 아버지의 서명 및 정보 부재로 인해 국적 이탈 신청서를 아예 접수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정계나 공직에 진출한 한인 2세 중 신원조회시 복수국적자인지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거짓 진술한 것으로 인해 불안에 떨고 있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제보가 계속 오고 있다.

한국 정부나 국회가 해외동포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발목을 잡고 있는 국적법은 ‘악법 중 악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유승준과 선천적 복수국적자를 그만 헷갈려 하고, 한국행을 택하려는 사람과 한국행을 택하지 않는 선천적 복수국적자를 구분해서 국적법을 개정하면 아주 간단하다. 즉, 2005년 홍준표 법 이전으로 돌아가 재정비하면 된다.
하루속히 한국 호적에 없는 경우에는 ‘국적 자동상실제’를, 호적에 있으나 17년 이상 해외 거주한 경우에는 ‘국적 유보제’를 채택하여 한국과 한국인의 세계화를 앞당겨야 한다.

<전종준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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