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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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대통한날

2021-05-22 (토) 임지나 헌팅턴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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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만에 며느리와 동네 코스코에 쇼핑을 갔다. 혼자 살며 코스코에서 그로서리쇼핑을 하는 것은 낭비지만 습관이 늘 코스코를 찾게 한다. 대신 잉여분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늘 두 아들네에게 인심을 쓴다.

목판 위에 진열된 옷가지들을 보며 식료품이 나열된 냉동실 쪽으로 들어섰다. 대여섯 줄 넘게 이어지는 냉동실 안에는 이름도, 어떻게 먹는지도, 무엇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식료품들이 가득히 쌓여있다. 그때 냉동실 안의 박스 하나가 번뜩 눈에 띄었다. 다른 식품은 잘 몰라도 내가 이것만은 확실히 안다. 커다란 게 다리가 그려져 있는 박스. 가격이 30.99달러였다. 어머나, 이게 뭐야. 내가 좋아하는 게 다리. ‘왜 이렇게 싸지 오늘 무슨 날이야?’ 특별세일? 나는 얼른 한 박스를 꺼내 쇼핑카트에 실었다.

사실 크랩 레그는 나 같은 서민들이 양껏 먹기에는 좀 부담스럽다. 언젠가 작은 아들 부부와 동부 단풍여행을 가 메인 주 포틀랜드 비치에 갔을 때였다. 유리탱크에서 뿍뿍 기는 게를 시켜 먹을 때도 3마리 이상을 시키지 못하고 입맛을 절제했었다.


며느리도 필요한 것을 골라 담고 나도 이것저것 담다보니 쇼핑카트는 벌써 고봉밥이다. 며느리가 카트를 밀고 계산대에 식품들을 올려놓는 동안 나는 코스코 카드를 캐시어에게 주고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597달러39센트?” “헐, 뭘 이렇게 많이 샀지?”

캐시어가 나를 쳐다보았다. 며느리도 나를 쳐다보았다. 몇 초간 나는 당황했다. 뭘 그렇게 많이 샀지? 하긴 두 집 그로서리쇼핑이다. 물가가 오죽 올랐나. 나는 두 말 없이 크레딧 카드로 지불했다. “어머니, 우리 뭘 샀죠. 합계가 600달러 가깝다니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며느리가 계속 고개를 갸우뚱했다.

집으로 온 뒤 차고 문을 열고 며느리가 물건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얘, 오늘 나 대박 났다.” “뭔데요?” “이거 봐. 이거” “아, 게요?” “그래, 이게 30달러야. 식당에 가봐라. 500달러도 넘을 거다. 한 박스 더 사올 걸 그랬다” 게 다리를 3등분하여 큰 며느리에게 한 봉지를 싸주고 작은 며느리 줄 것은 다른 봉지에 넣어두었다. 오늘은 정말 운수대통한 날이다.

“네, 어머니 잘 먹을게요. 그리고 영수증 저한테 주세요. 제 것은 계산해서 캐시로 드릴게요.” 사실 오늘 며느리의 장을 봐주려고 마음먹었는데 600달러 가까운 액수에 못 이기는 척 영수증을 주고 말았다. 한참 후 며느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300달러짜리 크랩 레그 잘 먹겠습니다. 호호호” 응, 그게 무슨 말이니? 어머니가 사신 크랩 레그가 297.99달러네요. 뭐? 어쩐지 허둥대더니. 제 값에 먹는 게 다리. 기분 좋은 날 운수 더블 대통이다. 나는 며느리가 준 120달러를 다시 돌려주었다.

<임지나 헌팅턴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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