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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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만들기

2021-05-21 (금)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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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를 매일 샌프란시스코에 데려다줘야 하는 시절이 있었다. 단 한 시간 반 정도의 수업을 위해 왕복 2시간을 달려 차에서, 카페에서, 거리에서 아이가 나오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나름 여기저기 돌아보며 구경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누리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노숙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가까이 지나가기 싫었지만 그래도 뭔가를 주어야한다는 마음에 가진 걸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이 일은 나의 일상이 되었고 언제 어디로 가면 누가 와있는 지까지 알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그들과 친구가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어느 날 내가 속한 교회에서 홈리스들에게 필수품과 물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별생각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모두 차를 타고 노숙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내려 생필품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가서 그들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차에서 내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한 사람이 화를 내며 물건을 카트에 집어넣고 있었다. 상황을 보아 하니 내가 그 사람에게 물건을 전달해야하는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가까이 가서 가방을 전해주자 고맙다며 공손히 받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그냥 사람이었다. 단지 그들에겐 운명이 좀 더 가혹하다는 사실만 달랐을 뿐이다.

내가 이름을 묻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다음에 꼭 보자고 말하고 돌아서는데 며칠이 지나도 그 이름이 잊히질 않았다. 그 이후로 그 친구는 오늘 어디서 잘까? 오늘은 너무 더운데 어디서 더위를 피하고 있을까? 어떻게 먹고는 다니는지 등등이 궁금하고 걱정됐다.

그 후로 노숙자를 만나면 꼭 그의 이름을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꼭 널 잊지 않고 기도하겠다는 말과 함께 가벼운 포옹을 해준다. 진짜 친구들과 헤어질 때처럼. 그럼 그들의 눈망울엔 눈물이 맺히고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작게 느껴진다.

이름을 불러주면 친구가 된다. 친구는 멀리 있어도 그리워하게 되고 안부를 걱정하게 되고 다시 볼 때까지 안녕하기를 기도해주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나와 만난 그 친구들은 모두 한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들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행복해지기를 매일매일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

<이미경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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