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없었던 일은 아니나 특히 근래 미국의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두 억만장자들의 이혼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경은 어떠할까. 물론 필자도 그 대부분의 일반 소시민에 속한다. 놀라움과 고소함, 무관심, 필연, 시원함, 또 다른 기대 등등 각양각색일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겠다. 시대를 소급해 올라가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이야기가 생각나며 펄벅 소설‘대지’의 주인공인 갑부 왕서방 또한 생각난다.
대원군 노년에 부인은 작은 댁(소실)을 알선(?)해 주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들이야 부와 권력을 자랑삼아 소실을 두는 세상이었으나 대원군은 그렇지 아니한 모양이다. 그렇기에 부인이 직접 나서 작은 댁을 물색했었던 게 아닌가싶다. 그쯤 나이에 무슨 노부부의 애정문제가 대단할까마는 남정네들은 그 나이에도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을 간파한 아주 현명한 부인이었던 것 같다. 하기에 자신은 안방마님으로서의 위치는 그대로 보존한 채 그 외 안주인의 큰일 중 하나를 소실로 하여금 대행하도록 한 것이 아닐까? 손 안대고 코 푼다고나 할까.
좀 다르긴 해도 주인공 왕부자는 자신의 부족한 딸의 훗날을 걱정하여 자신의 사후에 딸을 보살펴줄 젊은 소실을 자신이 직접 고른다. 한 사람은 권력, 다른 경우는 재력이다. 근래 미국의 두 억만장자들로 돌아가보자. 그 아무리 억만장자인들 20-30년 배필들이 어찌 젊었을 때와 같을 수 있을까? 한마디로 권태기가 오래전 와 있었을 성싶다.
다만 사회적 위치나 관념으로 인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얼마든지 기회들은 있었을 성싶다. 하기야 이들 주인공들 중 한사람은 결혼기간 중에도 옛 연인과 둘만의 여행을 하였다하니 이미 암묵적 동의는 있었던 것 같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분명 있다. 동양에선 비공개적, 서양에서 공개적으로 이미 끝났다 싶으면 공개적으로 이혼을 발표, 실행하고 동양에선 그렇더라도 형식상 결혼상태를 지속시킴이 다른 것 같다.
여기에 가족이라는 것에 대한 가치, 부부간 상대방에 대한 가치에 대한 평가도 다르다.
부와 가치를 연결시키려는 태도도 불합리하지만 너무 엄청난 부는 더 이상 가치의 척도가 될 수 없다. 그 사람의 가치를 부가 더 상승시켜 주는 것도 아님은, 다이아몬드나 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면 먼지나 굴러다니는 돌멩이에 불과한 것이나 다름 없음으로 알겠다.
그 사람의 가치는 결국 그 사람이 지닌 인간으로의 됨됨이가 아닐까한다. 권력도, 재력도, 화려한 학력이나 이력도 아닌 순수한 인간됨이 진정 그 사람을 대변하는 가치, 바로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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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