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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난데일 로터리클럽 어머니

2021-05-16 (일) 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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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난데일 로터리클럽 어머니
지난 일요일은 미국에서 어머니날이었다. 한국에서는 바로 전날인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해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기억하는 날로 삼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따로 한다. 올해의 아버지날은 6월 20일이다. 어머니는 10년 전에 돌아가셨기에, 전날 그러니까 한국의 어버이날에 아버지와 식사를 같이했다. 반주로 아버지는 평소대로 정종, 나는 운전을 핑계로 더 약한 것으로 했다.

그런데 두 주 전 일요일에는 내가 멤버로 있는 애난데일 로터리클럽에서 어머니 역할을 해 오던 Gwen Cody(그웬 코디)씨가 돌아가셨다. 99세였으니 장수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분의 어머니가 104세까지 사셨기에 코디 씨의 평소 목표 중 하나가 어머니 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었다. 그러니 5년이 모자라 안타깝다. 그래도 70대 중반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에 비해 사반세기를 더 산 셈이니 슬퍼할 수 만은 없다.

로터리클럽은 팬데믹으로 인해 1년 이상 매주 가지던 대면 모임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코디 씨를 뵌 지가 오래되었다. 코디 씨는 펜데믹 전에 웬만한 일이 아니면 간병사나 친지로부터 라이드를 받아서라도 꼭 모임에 참석했다. 90대 중반이 되기까지 직접 운전을 했던 그는 클럽에서 최초로 여성 회장을 지냈을 뿐만 아니라, 1980년 대에 버지니아 주 하원의원을 지냈다. 2차 대전 때는 참전해 프랑스 파리에서 암호해독 작업을 했다고 한다.


성격도 쾌활하고 나이 차이에 상관 없이 스스럼 없이 대할 수 있었다. 90세가 넘어서도 부동산 중개업자로 손님들을 안내했고 몇 시간 떨어져 있는 본인의 농장에 손수 운전하고 다녀오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오래 전에 남편을 잃었던 코디 씨의 유머감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내 클럽에서는 거의 매 모임때 마다 외부 인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다. 그런데 외부 인사가 강연을 마친 후 코디 씨가 단골로 묻는 질문이 있었다.

“혹시 싱글입니까?” “그렇다면 저도 싱글로서 현재 사귀는 사람이 없는데 저는 어떤가요?” 상대의 나이에 상관 없이 하는 이 질문에 장내는 웃음바다가 된다. 손자 뻘 나이의 초청 인사에게도 어김 없이 주어지는 이 질문에 대해 코디 씨는 자신은 나이 차별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와는 소속 정당도 다르고 정치적, 교육적 이슈에 대한 견해 차이도 제법 컸지만 내가 교육위원직을 수행하는 기간 동안 항상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아마 본인도 과거에 선출직 공직자 생활을 했기에 더욱 그랬으리라 생각되었다. 물론 종종 읽고 참고해 보라고 신문, 잡지 기사나 다른 사람이 보내온 편지들도 건네 주었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읽었는지 꼭 확인을 해 보기에 싫더라도 대충이라도 읽어야 했다. 그런 자신의 방식으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는 것의 중요함을 내게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코디 씨가 97세 생일을 맞았을 때다. 그러니까 2019년 4월이었다. 로터리클럽에서 누가 생일을 맞으면 내가 보통 생일축하 노래를 선창해야 했다. 이번에도 분명히 나에게 부탁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언제 또 그 분을 위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를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감히 누구 앞에 나서서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당시 조금씩 배우던 기타를 들었다.

그리고 머리에 알록달록한 고깔콘 모자를 쓰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사진). 그게 내가 코디 씨에게 노래를 불러 준 마지막 기회가 되어 버렸다. 크리스마스 파티 때면 꼭 나에게 한 곡 하라고 명령하곤 했는데 더 이상 그럴 기회도 없어진 셈이다.

내 아버지가 몸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다 살았나 보다 등의 약한 말씀을 가끔 하실 때 지긋한 90대인데도 활달하게 활동하는 코디 씨 얘기를 드렸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아버지와 저녁 식사를 같이 할 때 코디 씨가 돌아가셨다는 말씀은 안 드렸다.

<문일룡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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