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아는 지극한 진리,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그런데 그 상식적인 진리를 내 자신이 실천하려니 자아봉착, 고민, 우울의 늪에 빠져버렸다.
머지않아 삶의 터를 옮겨볼까 하며 집 정리를 하려고 돌아보았다. 얼마나 버릴 것들이 구석구석 쌓여있는지. 옷들은 쉽게 처분할 수가 있기에 우선 책장에 나열된 책들부터 둘러보았다.
그런데 미국 와서 힘들게 공부하면서 구입한 책들 하나하나, 그리고 서울 방문할 때마다 싸들고 온 책들,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하나 버리고 싶은게 없었다. 억지로라도 몇 권씩 얼마간 리사이클 통에 매주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감정은 통제 불능이 되어버렸다. 나의 혼신이 담기어있는 두꺼운 수업, 강의노트, 나머지 책들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다. 마치 나의 분신을 버리는 것 같은 상실감, 아쉬움 플러스 나이 들어가면서 주위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는 결단력 부족 때문에.
내가 전에 미국 대학교에서 노인학을 강의했던 내용들을 문득 생각하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자신이 학생들에게 가르친 내용은 립 서비스, 학문적, 피상적인 지식의 외침일 뿐이었다. 천하의 영웅, 유명인들도 다 모든 것 내려 두고 떠났다. 별 볼일 없는 내 자신이 무어라고 이렇게 바둥 대며 집착하는 모습을 보며 언제나 철이 들까 안타까웠다.
하긴 세상 소유 많으면 무엇 하겠나. 한국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은 감옥소에 가있고, 최고 권력의 대통령들도 차례로 감옥소에 가는데.
최근 윤여정은 74세에 오스카상을 받으며 우리에게 새롭고 싱싱한 용기를 주었다. 그런데 그들도, 우리도, 나도, 이 세상에 갖고 떠날 게 하나도 없다. 오늘 내게 주어진 새로운 아침을 열며 잠시 소유하고 빌려쓰다 놓고 가는 소위 ‘ 나의 것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삶의 단순한 것에서 기쁨을 누리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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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자 / 한미 국가 조찬기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