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디를 가나 나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한결같은 반응이 있었다. 지금은 비둘기 탭댄스 하는 소리라고 농담으로 표현하고 웃어버리지만 어렸을 때는 정말 화가 나고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될 정도의 수치심으로 속이 상했었다.
지나가며 뭔가를 물어본 것도 아니고, 그들을 방해한 것도 아니다. 내가 다리를 절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노인들이 무심코 “쯧쯧” 혀를 차는 것이었다. 그 혀 차는 소리는 차라리 나에게 욕을 하거나 시비를 거는 것보다도 즐겁게 길을 걸어가던 나의 감정을 단번에 흔들어 모멸감을 느끼게 만들곤 했다.
장애를 가진 내 또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본 경험일 것이다. 물론 그분들은 깊은 생각 없이 하는 소리일 수도 있고 오히려 나에게 스스로의 자격지심 때문에 왜곡해 듣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해하고 정리하자면 장애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관심표현이며 순수하게 안쓰러운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불쑥 던지는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밖으로 표현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서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1990년에 특수교육법을 개정하면서 사람먼저언어(People First Language)로 장애인을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자폐아동’(autistic child)에서 ‘자폐를 가진 아동’(a child with autism)으로 사람을 먼저 쓰고 장애특성을 뒤에 표기하는 방법이다.
접속어가 더 들어가야 하니 문장이 길어지고 번거로워졌지만 그동안 ‘사람먼저 부르기’를 열심히 실천하다보니 이제는 일상에서 아주 익숙해졌다. 모든 수식어가 단어 앞쪽에 나열되는 한글의 문법체계에서는 영어식 변화가 어렵지만 우리나라도 부정적이거나 비하적인 장애표현을 버리고 인격적이고 동등한 단어들로 바꾸었다. 예를 들어 한문의 ‘놈 자’를 사용하는 ‘장애자’에서 ‘사람 인’으로 바꾸어 ‘장애인’으로 지칭하는 변화가 있은지 꽤 오래되어 정착되었다.
한 세미나에서 듣기 불편하니까 ‘장애인’으로 불러 달라는 장애인과 본인이 아는 장애자 친구는 장애자를 선호한다는 비장애인이 언성을 높이다가 갑자기 강사였던 나에게 판결권을 주었다. 법적으로 ‘장애인’을 사용하니 공식적인 경우에는 반드시 ‘장애인’을 사용하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장애자’로 불림을 원하는 사람은 장애자로, ‘장애인’을 원하는 사람은 장애인으로 부르는 것이 대화법의 기본이라고 설명을 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기 위해 2016년에 결성된 장애인 모임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시각장애인 변호사와 몇몇이 시작한 단체로 장애인의 교육과 복지를 위한 공약을 한 힐러리를 지지했다. 그들은 4년을 기다리며 전국적인 조직으로 커졌고 결국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바이든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일조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Disabled Person’으로 표현한 이메일이 눈에 띄었다. 장애인을 대표하는 조직에서 어떻게 ‘사람먼저’를 모를 수가 있느냐고 항의 겸 교육 겸 이메일을 보냈다. 놀랍게도 기성세대는 ‘사람먼저’를 선호하지만 밀레니엄 세대는 ‘장애’를 부각해 부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두 방법을 다 사용한다는 답이 왔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직접서술법은 문제의 핵심을 유지하는데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이지도 법적이지도 않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어떤게 좋을까? 역시 그 답은 한국문화에 있다! 우리나라는 이름보다 직함이나 관계로 부른다. 장애학생들이 나를 부를 때 ‘교수’를 ‘교주’로 어눌하게 발음을 하는데 나는 그들이 기억하고 불러주는 ‘교주’가 좋아서 교주를 필명으로 쓰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굳이 ‘지적장애아’ ‘자폐아’로 지칭하기보다는 ‘누구의 형’ ‘팀원’ 등으로 관계나 직함으로 부르고, 모르는 경우에는 그 사람의 다른 긍정적인 특징으로 ‘파란 옷 입은 아이’ ‘키가 큰 애’ 등으로 표현해보자.
나는 교회에서도 지적장애를 가진 교인들에게 집사, 권사, 장로와 같은 직함을 주자고 주장한다. 아직까지 왜 주차장에서 주차봉사를 하는 지적장애인 장로는 없을까? 미스터리이다.장애인을 대하는 좋은 방법은 내 가족이면 어떻게 대할까를 잠시 생각해보면 된다. 그리고 장애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직접 물어보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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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칼스테이트LA 특수교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