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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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손녀와의 인터뷰

2021-05-08 (토) 이숙자 /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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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그동안 집 공사로 3개월을 함께 살던 딸네 식구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 즈음 우리 부부도 코로나 백신을 두 차례 맞고 2주가 지난 후였던 터라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 가족이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포옹할 수 있었다. 특히 손자, 손녀가 오랜만에 우리를 긴 시간 포옹해주었는데, 그 순간의 흐뭇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사실 팬데믹 전에는 아이들이 학교와 운동 등으로 서로 매우 바쁘게 지내서 대화의 기회도, 시간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일년 간 우리는 오히려 팬데믹 덕분에 일상에 여유가 생겨 매주 만나 마당에서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대화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일로 또 3개월을 함께 살 기회도 생겼고, 그 동안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 덕으로 아이들이 우리 집을 떠나기 전 우리 부부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우리로서는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해서 인터뷰를 하기 며칠 전부터 옛날 사진도 들춰보며 어린 시절 기억을 곰곰이 되돌아봤다. 내가 어렸을 때는 대부분 주변 친구나 친척들이 형제자매가 많았다.
하지만 한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서 늘 식구 많은 가정을 부러워하곤 했다.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해 남매를 낳았고, 그들이 또 남매를 낳아서 이제 나의 직계 식구는 모두 10명! 적지 않은 이 가족 울타리에 나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인터뷰를 이끌었던 주인공은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우리 부부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해주었던 10학년 손자다. 손자는 “어렸을 때 제일 남는 기억이 무엇이냐”는 첫 질문으로 시작해서 할머니에게는 진실성(integrity)이 아주 중요한 것 같다,

할아버지는 질문해야 답변을 하시는데 할머니는 미리 얘기를 다해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시면 되겠다, 등등 나름의 방식으로 인터뷰를 이끌어갔다. 이렇게 인터뷰 내내 손자는 우리의 답변을 자신의 아이폰에 녹음하고 랩탑에 기록했고, 손녀딸과 나는 답변 겸 대화 겸 이런저런 지난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인터뷰 도중에는 나의 기억이 희미한 얘기들도 나왔는데, 특히 아이들이 몇 년 전 여름에 온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날씨가 너무 더워서 힘들었는데도 그 힘들었던 것보다 많은 친척을 만난 즐거움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시골에 사는 남편 누님이 여자애들에게는 용돈을 주지 않고 남자애들에게만 줘서 처음으로 남녀차별을 받아봤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우리 딸이 남매에게 똑같이 그 선물을 나눠준 얘기도 함께 들었다.

이와 함께 나는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정성으로 보내주신 족보를 보여주면서 “너희들은 이조 12대 인조대왕의 후손으로, 이씨 집안의 14대손이라고 알려주며 Ancestry DNA test가 필요 없이 이 족보에 기록이 다 있다”고 하니 아이들은 매우 즐거워했다.

<이숙자 /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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