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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현역으로 살려면

2021-05-06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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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칸소 주의 최고령 경찰관은 다음 주면 만 92세가 된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주위에서는 아마 미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직 경찰이지 않을까고 생각하고 있다. L.C. 스미스라는 이름보다 ‘벅샷’(산탄총)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캠든시 경찰국에서 네이버후드 워치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캠든은 그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 동네로 인구는 1만1,000여명. 대부분의 주민들이 그를 알고 있고, 그 역시 마찬가지여서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한 커뮤니티 방범에는 적임자라고 할 수 있겠다.

벅샷은 46년간 카운티 셰리프 경관으로 일한 후 개인 일을 해 볼 요량으로 10년 전 은퇴를 했었다. 하지만 몇 달을 쉬게 되자 사람 속에서 어울리고 남을 도울 수 있던 경찰생활이 그리웠다. “낚시가 취미도 아니고, 사냥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할 일이 없었다”는 그를 캠든 경찰이 채용했다. “은퇴하기에는 (타운에 대해) 너무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가 82세에 재취업에 성공하기까지는 “권총과 경찰배지가 경찰관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는 그의 평소 신조가 밑받침이 됐을 것이다. 56년째 경찰로 일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순찰차를 타고, 법원 정리로도 나가는 등 현장을 지키고 있다. ‘신이 허락할 때까지’ 은퇴계획은 없다고 한다.


일정 나이가 되면 물러나야 하는 엄격한 정년제 사회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80대 현역이 없지 않다. 백악관 코로나 자문관인 닥터 파우치만 해도 작년 크리스마스에 80세를 맞았으나 여전히 현직 연방 공무원이다. 국립 앨러지 & 감염병 연구소장 자리만 36년이상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스포츠캐스터 빈 스컬리가 89세 때까지 LA다저스 중계석을 지켰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과 창의력, 열정과 집중력 등 거의 모든 기능이 떨어진다. 여기저기 고장나는 곳도 많다. 80대 현역으로 일하려면 이런 노화 증상을 이겨내야 한다. 무엇보다 나이가 넘보지 못하는 형형한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팬데믹으로 교회나 성당 등의 예배가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예배 옷차림은 편해졌다. 헐렁한 배바지 등 평상복, 급하면 잠옷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앉기도 한다. 오클라호마 주 털사에서는 한 80대 흑인 은퇴교사의 온라인 예배 차림이 화제가 됐다. 지난해 3월 출석하는 교회의 예배가 온라인으로 바뀐 뒤에도 그녀는 여전히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장을 한 뒤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그녀의 화려한 예배 패션은 모자에서 아래 위 색상이 어울리는 의상, 장신구, 신발까지 매주 바뀐다. 성경 귀절과 함께 매주 페이스북에 찍어 올리는 셀피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격리로 지친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말없는 격려의 메시지가 됐다. 그의 온라인 예배 패션은 지역 TV에 소개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주인공인 82세의 라 번 포드 윔블리는 주일 전날, 다음날 교회 입고 갈 옷과 모자를 가지런히 챙겨 놓은 후 잠자리에 드는 것이 어머니로부터 배운 오랜 습관이었다고 한다. 온라인 예배를 드린다고 목욕 가운과 슬리퍼 차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교육학 박사이기도 한 그녀는 초임 때부터 멋쟁이 교사였다. 60년대 초 시카고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으로 교직에 들어선 그녀는 아이들이 좋아하고, 따라 하고 싶은 옷차림을 하는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은 금세 반응했다. “미스 포드, 참 예뻐요”. 다가와 선생님의 팔을 쓰다듬는 아이도 있었다. 새롭게 바뀌는 그녀의 패션은 아이들에게 즐거움이었다. 교장과 교육감 등 교육 행정가로 변신한 후에도 직장과 교회에서 그녀의 패션 노력은 바뀌지 않았다. 교회의 담임목사는 “닥터 윔블리의 옷차림을 보면 내면의 우아함과 지혜, 위트와 재치까지 느껴진다”고 소감을 말한다.

이런 노년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미소짓게 한다. 내면의 활기와 긍정적인 마인드가 부럽기도 하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크고 작은 인간정신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한 59세 남성은 지금 미국 동부를 따라 뻗은 2,200마일의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걷고 있다. 미국인 100만명이 앓고 있다는 이 퇴행성 신경질환을 6년전 선고받은 그는 의사로부터 이 병에는 약 만큼 운동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해 팬데믹 속에서도 300마일을 걸었고, 나머지 1,900마일을 끝내기 위해 올해 4월초 조지아에서 메인까지 14개 주를 잇는 이 산길에 다시 들어섰다. 7월말이나 8월초까지 산행을 계속하면서 파킨슨 병도 알리고, 파킨슨 재단을 돕기 위한 기금모금도 할 계획이다.

모두 움츠러드는 팬데믹 속에서 애나하임의 디즈니랜드에서 플로리다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까지 3개월에 걸쳐 달린 50대 당뇨환자도 있다. 나이, 질환 등을 뛰어넘는 인간승리의 도전은 주변 어디선가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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