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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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와 미국 이민

2021-05-04 (화)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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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이민 120년 그리고 한국 영화 102년 역사속에 윤여정씨의 오스카 수상이 우리 모두를 기쁘게 했다. 나도 ‘미나리’를 봤지만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두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온 젊은 부부의 이민 도전기이다. 이는 정이삭 감독이 직접 겪었던 자전적 이야기라 더욱 흥미로웠다. 이 영화를 보면서 미주한인 이민의 역사가 영화의 스크린처럼 지나갔다.

1965년 수정이민법안이 통과되면서 유럽계 백인 위주의 국가별 할당제도가 폐지되고 한국인의 가족이민과 취업이민이 장려되었다. 1965년 전후에는 미군과 결혼한 사람들의 가족이민으로 시작되었고, 영화에서 보았듯이 경험이 없어도 되는 병아리 감별사와 같은 비숙련공으로 취업이민의 문을 두드렸다.

닭공장 관련 비숙련공은 기술이나 영어가 되지 않아도 되는 주로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기에 초기 미국 정착시 어려움이 많았다. 그 당시에 온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에 가기만 하면 집도 차도 걱정 없고 더욱이 아이들을 공부시키기에는 천국이라는 말에 무조건 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어떤 이는 하루 종일 가위로 닭의 배를 가르는 일만 약 3개월 하다 보니 오른 손의 힘줄이 늘어나서 오른 손을 못 쓰게 되었다고 하는 등 눈물겨운 사연이 많다.


영화에서 3만 명의 미국이민자의 가능성을 미리 보고 아칸소 농장에서 한국 채소를 재배했듯이, 1980년대 미주동포의 수는 35만 명이었으며, 지금은 약 3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결과 한인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미주한인이 한인을 초청하게 되었고 비숙련공에서 숙련공, 전문직 그리고 투자 등 다양한 이민으로 전환되어가고 있다.

그러면 왜 미나리 영화가 미국사회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까? 미국은 이민의 나라이다. 유럽계 이민자들은 100년 전에 미국에 정착하였기에 최근의 이민 정착기에 대해 생소한 만큼 큰 감동으로 느끼지 않았나 생각한다. 미국 정착 때 겪게 되는 문화적, 언어적 장벽을 극복하면서 미나리처럼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통해 가족 간의 사랑으로 승화시킨 인간 승리의 영화였기에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나본다. ‘미나리’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미나리는 아무리 진흙탕이라도 물만 있으면 깨끗하게 자라난다. 우리 이민자들은 어떤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건강하게 이민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는 것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많은 이민자들이 한국에서 어머니를 모셔와 아이들을 맡기고 일터로 나가는 일이 흔하다. 말도 통하지 않고 한국처럼 교통이 편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하루 종일 일터에서 돌아올 자식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더욱이 할머니 역할을 맡은 윤여정은 오줌싸개 손자를 보고 ‘고장 난 고추’라고 브로큰잉글리시로 만든 단어들이 매우 신선하고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힘든 미국 생활 속에서도 짧은 영어로 유머를 자아내는 여유가 미래에 대한 희망과 행복을 미리 보는 듯하였다.

손자를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온 할머니가 가져온 고춧가루와 멸치는 지금도 미주 동포들에게는 환영받는 선물이다. 미국에 오래 살아도 음식과 정신은 여전히 한국식으로 남아있는 것은 영화 속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보릿고개를 겪었던 1세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이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을 가지길 바랬다. 그러나 미나리 영화는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영화계에 뛰어든 한인 2세들에 의해서 탄생했다. 이제는 전문직에 연연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진정 잘 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게 하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훈훈했다.

이제 우리는 이민자의 자리에서 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요즈음 연일 대두되고 있는 아시안 증오범죄가 이 한 편의 영화로 이민자를 이해하고 고마워하는 다리가 되어주기를 기대해본다.

<전종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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