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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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추억들

2021-05-03 (월)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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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날이 오면 그때의 아픔과 분노를 다시 느끼게 된다. 세월이 가면 그 느낌은 줄어들게 되지만 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내적으로 소화되지 않는 상처는 다시 회상할 때마다 통증을 느끼게 된다.

신체적으로 상처가 난 자리가 아물면 흉터가 생기고 보기 싫지만 통증은 없다. 그러나 이 흉터가 너무 크면 기능 장애를 유발할 수 있고, 또 중요 부위(눈가)에 생기면 눈이 작게 보일 수도 있다.

같은 심리적 상처를 받았지만 특별히 아픔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첫째 그전에 이런 비슷한 상처가 있었던 사람, 둘째 그 당시 형편이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 지쳐있었던 사람, 셋째 성격적으로 의존적, 자기애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때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4.29 폭동 같은 경험은 조국을 떠난 아픔과 불안 위에 열심히 가꾸어온 우리의 기대와 꿈을 한꺼번에 배신당한 미국사회에 대한 아픔으로, 거의 모든 사람에게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었다. 그러나 또한 이 경험으로 우리 이민사회는 많이 성숙해져왔다.
그러나 나에겐 이 아픈 기억이 잊어서는 안 될 숙제로 남아있다. 29년전 그때, 2,300여명의 폭동 후 정신적 트라우마로 카운슬링 받은 분들과 600여명의 정신과 치료를 받으신 분들이 명예를 회복하고, 정신적 후유증(429 PTSD)에 대한 미 정부의 보상을 받을 때까지 이들을 위해 나는 증인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날이 올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분노란, 분노의 피가 흐르는 그 자신의 혈관을 먼저 상하게 한다. 그러나 4.29 폭동에 대한 분노는 대의를 위해 건강하게 보관되어 억울한 희생자들의 아픔을 씻는 명약이 되어야할 것이다.

<조만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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