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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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내 눈에 비친 예수

2021-04-28 (수)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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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에, 전생(前生)에, 선인(부처의 전생)이 산속에서 인욕(忍辱)정진을 닦고 있었다. 가리 왕이 이곳으로 소풍을 왔다. 낮잠에서 깨어나서 보니, 궁녀들이 주위에 없다. 좀 떨어진 곳에서 궁녀들이 인욕선인하고 다정스레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질투를 느꼈다. 인욕선인에게 따졌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선인이 인욕정진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인욕을 닦고 있다고? 그래 잘 되었다. 네가 얼마나 잘 참는가 한번 알아보자,” 그리고는 부처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부처는 , “만약 그 때에 내가 아상(我相, 나라는 생각)과 인상(人相, 남이라는 생각)이 있었더라면 나는 반드시 분노의 불을 뿜고 원한을 품었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 때 아상·인상이 없었느니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처는 “ 보살은 마땅히 아상·인상 그리고 모든 상(相)을 떠나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내도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몸이 찢겼을 때, 고통을 견디어 내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아상·인상이 있기에 욕심이 생긴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우리는 남들을 속이고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독재자들이 국민을 억압하고 그리고 정적들을 죽이는 것도 다 욕심 때문이다. 아상이 없다면 터무니없는 욕심은 생기지 않는다. 아상·인상이 없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예수는, 부처처럼, 아상·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예수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제 것이로다”(마태5;3)라고 말했다. 마음이 아주 가난해지면, ‘나라는 생각’ 그리고 ‘너라는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다. 예수는 “이웃을 제 몸 사랑하듯 사랑하라”(마태22;39)고 말했다.

아상·인상이 있으면 결코 이웃을 제 몸 사랑하듯 사랑해주지 못한다. 우선 사랑하는 자기 아내·자기 남편 그리고 자기 자녀들도 제 몸 사랑하듯 사랑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웃을 자기 몸 사랑하듯 사랑해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예수는 자기가 말한 대로, 실제로 이웃을 자기 몸 사랑하듯 사랑해주셨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어 죽어갈 때, 상상만 해도 엄청나게 아팠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카23;34) 하고 기도했다. 만약 예수가 ‘나라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예수는 분노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분노하지 않았다. 부처가 가리 왕으로부터 심한 고문을 당하고 있었을 때 분노를 느끼지 않았던 것처럼, 예수는 차분하게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어 냈었다. 예수는 “앙갚음하지 말라. 누가 왼뺨을 치거든 오른뺨마저 돌려대라.”(마태5;39-40)라고 말했다. 예수는 실제로 오른뺨마저 돌려댔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사람들은 예수를 예배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제 몸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해주는 일’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런데 예수는 제 몸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해주셨다. 그 높은 정신에 나는 감탄한다. 그리고 예수를 존경한다.

<조성내/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임상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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