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그동안 집 공사로 3개월을 함께 살던 딸네 식구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 즈음 우리 부부도 코로나 백신을 두 차례 맞고 자가격리를 2주 끝낸 후였던 터라,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온 가족이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포옹 할 수 있었다. 특히 손자, 손녀가 오랜만에 우리를 긴 시간 포옹해 주는데, 그 순간의 흐뭇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사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아이들이 학교와 운동 등으로 서로 매우 바쁘게 지내서 대화의 기회도, 시간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일 년 간 우리는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 덕분에 서로의 일상에 여유가 생겨, 매주 만나 마당에서 식사도 하고 이런 저런 대화 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로 또 3개월을 함께 살 기회도 생겼고, 그 동안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 덕으로 아이들이 우리 집을 떠나기 전 우리 부부에 대해 따로 인터뷰 하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그런 제안이 우리로서는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해서 인터뷰를 하기 며칠 전부터 옛날 사진도 들춰 보며 어린 기억을 곰곰이 되돌아 봤다.
내가 어렸을 때는 대부분 주변 친구나 친척들이 형제자매가 많았다. 하지만 한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서 늘 식구가 많은 가정을 부러워하곤 했다. 나는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해 남매를 낳았고, 그들이 또 남매를 낳아서, 이제 나의 직계 식구는 모두 10명! 적지 않은 이 가족 울타리에 나는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인터뷰를 이끌었던 주인공은 조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우리 부부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해 주었던 10학년인 손자다. 손자는 “어렸을 때 제일 남는 기억이 무엇이냐”는 첫 질문으로 시작해서 할머니에게는 진실성(integrity)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할아버지는 질문해야 답장을 하시는데 할머니는 미리 얘기를 다 해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시면 되겠다 등등 나름의 방식으로 인터뷰를 이끌어 갔다.
이렇게 인터뷰 내내 손자는 우리의 답변을 자신의 아이폰에 녹음하고 랩탑에 기록했고, 손녀딸과 나는 답변 겸 대화 겸 이런 저런 지난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또 인터뷰 도중에는 내 기억에 희미한 얘기들도 나왔는데, 특히 우리 아이들은 몇 년 전 여름에 온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날씨가 너무 더워서 힘들었는데도 그 힘들었던 것보다 많은 친척을 만난 즐거움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시골에 사시는 남편 누님이 여자애들에게는 용돈을 주지 않고 남자애들에게만 줘서, 처음으로 남녀차별도 받아 봤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우리 딸이 남매에게 똑같이 그 선물을 나눠 준 얘기도 함께 들었다.
이와 함께 나는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정성으로 보내주신 족보를 보여 주면서 “너희들은 이조 때 12대 인조대왕의 후손으로, 이씨 집안의 14대 손이라고 알려주며 Ancestry DNA test가 필요 없이 이 족보에 기록이 다 있다”고 하니, 아이들은 매우 즐거워했다.
미국에 살면서도 집안의 돌림자가 ‘기’라 한국인 엄마와 백인 아빠의 첫 아들로 태어난 손자의 이름 앞에 ‘원’을 붙여 “원기”로 불러 주었고, 손녀딸이 태어나면서 내 마음에 “여태껏 살아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감사의 마음이 벅차서 ‘은혜’로 이름을 지어 주는 등 우리는 한국인의 정서를 손주들에게 이름을 통해 가장 먼저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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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자 / 비엔나,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