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정부의 신속한 백신접종과 통 큰 재난지원금의 지급 등으로 모처럼 미국에 사는 자존심을 회복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때 아니게 아시안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범죄로 곤욕을 겪는다. 트럼프 시대에 싹터온 백인우월주의와 흑백 갈등이 선거가 끝나자 아시안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 범죄로 불이 옮겨 붙었는데 이건 아무래도 생뚱맞은 일이다.
내일이면 4.29 폭동 스물아홉 돌을 맞는다.1992년 4월29일 LA를 중심으로 시작한 폭동은 그날로부터 거의 1주일 동안 계속된 끝에 53명이나 사망하고 2,000여 명이 부상했는데 특별히 우리 한인사회가 큰 손실을 입은 불행한 사태였다. 그 이후 한인사회가 흑인 커뮤니티와 히스패닉 커뮤니티와의 화합을 위해 노력하며 지나왔는데 또 증오의 대상이라니, 이해가 안 간다.
증오나 혐오를 일으키는 요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대방에 대한 멸시나 비하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시기나 질투에서 온다. 이번의 증오범죄가 ‘우한 코로나’에 대한 비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아시안 문명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 때문에 결코 가벼워 보이지가 않는다. ‘아시아가 오고 있다’-- 이것은 역사의 흐름이며 미국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일본이 선두에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과 인도의 부상이 두드러진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포위와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나 중국의 경제, 과학지표가 심상치 않게 나오고 있는 것이 문제다. 뒤이어 한국이 달려오고 있다. 백신 수급에서는 다소 혼란을 겪고 있는 한국이 방역에는 성공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0년 국내총생산 GDP 지표에서 브라질을 제치고 10위에 올라섰다.
코로나 19의 악재 속에서도 현대와 기아자동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계속 늘어나 2020년 말 기준 8.9%를 기록했다고 한다. 코스코 매장의 입구에서 삼성 TV와 LG 냉장고의 사열을 받고 들어서면 언제 들어왔는지 C J 식품이며 농심, 풀무원, 대상 등 한국산 먹거리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80년대 GM 자동차, RCA TV, GE 냉장고만 주로 있던 시절과는 격세지감이 든다.
지난 일요일 저녁에는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씨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아 지난 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에 앞서 BTS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빌보드 싱글 1위를 차지한데 이어 2020 베스트셀러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문화에서는 인종의 벽을 넘어섰다.
그러나 미국 내 아시안 증오범죄가 계속해 보도되자 ‘괜찮으냐’ ‘떠나야 되지 않느냐’며 걱정하는 전화들이 서울에서 걸려온다고 한다. 겨우 팬데믹을 떨치고 먹고 살 준비를 하고 있던 이민자들에게 거센 차별의 파도가 덮쳐왔다. 타향살이가 걱정 없을 때 사람들은 고향을 잊는다. 그러나 떠나와 사는 곳이 고달프고 위험할 때면 두고 온 고향의 익숙한 장소, 푸근한 인정을 그리워한다.
4.29 폭동과 지진을 거치며 흔들렸던 이민자들 중에는 역이민을 감행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곧 ‘역 역이민’으로 돌아온 이들도 많았다. 전염병으로 가족과 이웃을 잃은 아픔과 경제적 실의를 딛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우리 이민자들은 조금은 특별하고 조금은 독한 데가 있는 사람들이다. 특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머나먼 땅으로 이민을 결행했으며 독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모진 지진과 폭동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살아올 수가 있었겠는가,
고국의 성장과 한인사회의 저력이 우리의 자산이다. 그렇다고 오만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난 주 연방 상원에서 아시안 증오범죄 방지법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킨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가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일에 익숙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한인사회와 아시안 커뮤니티가 강력하게 연대해 대처해나가되 ‘싸움꾼’이 아니라 ‘화해꾼’으로 나서야한다. 벼랑 끝에 섰을 때 희망은 있다. 포기하지 말자.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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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