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활절에 우리 부부가 백신 2차 접종을 끝낸후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에서 벗어난 기쁨을 만끽하며, BJ 주유소에서 나는 휘발유를 넣고 와이프는 식품점에 잠깐 들어갔다.
차 탱크를 다 채우고 BJ카드와 크레딧카드를 지갑에 집어넣는데 와이프한테 전화가 와서 지갑을 카시트에 놓고 전화받으며 노즐을 주유기에 다시 꽂고 나왔다.
저녁에 아들 집에서 부활절 저녁 초대가 있다고해서 가기 전에 손녀의 장난감을 하나 사려고 월마트에 갔는데 내 뒷주머니에 지갑이 없는 것을 알았다. 혹시 카시트 부근에 떨어졌나 하고 아무리 찾아도 없다. 분명히 주유소에서 떨어트린 것을 알고 부랴부랴 그곳에 되돌아가서 주변 땅바닥을 자세히 찾아보아도 없었다.
혹시 누가 내 지갑을 집어들고 주유소 사무실에 맡겨놓았을 것 같아서 가보니까 젊은 흑인 남자 혼자 있었다. 그의 대답은 아무도 안왔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나 CCTV를 볼 수 있냐고 했더니 고장났다고 한다.
BJ 마켓 안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매니저를 찾으니 젊은 백인여자였다. 지갑을 아무에게도 받은 기록이 없다고 한다. 주유소에 있는 CCTV를 보자고 졸랐더니 자기 혼자 사무실에 들어가서 내 차의 사진을 자기 전화기에 찍어서 보여주는데 간판에 가려서 차 앞부분만 조금 보이고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안 보였다.
내 뒤에 차 3대를 보았는데 아무도 움직이는 모습을 못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주유소 흑인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옛날에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백을 잃어버렸을 때도 가방을 찾아 지갑을 열어보니 현금만 쏙빼고 나머지는 그대로 있었다.
밤에 청소하는 사람이 젊은 흑인이라는 것을 뻔히 알지만 그까짓 돈이야 없어져도 그만이지만 나머지 신분증들을 안 건드려서 무지하게 고마웠었다. 혹시 이번에도 그랬으면 하고 주유소 사무실에 다시 가서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친절하게 남기고 나왔다.
비상금 100불짜리와 합해서 현금 180불은 잃어도 상관없다. 지난 30년 이상 사용해온 내 VISA 카드는 거의 10만불을 현금으로 빼낼 수 있고 여행할 수 있는 마일리지가 8만이나 되어서 우선적으로 전화로 스탑시켰다.
하필 그날이 토요일이라 임시 운전면허증을 낼 수 있는 월요일까지 운전도 못하게 되었다. 마침 백신을 2번 다 맞고 받은 백신카드도 다시 발급해줄지 모르겠다. 나머지 소셜카드와 각종 보험카드들과 쇼핑카드들도 다시 만들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요새같이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굶주리고 불안에 떠는 미국 주변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백성들이 수없이 밀입국 하고 있고 이미 미국내에 있는 수많은 불법체류자들이 있는데, 이들한테 어느 신분증이든 부르는 게 값으로 팔린다.
인도나 중국 등 컴퓨터 도사이며 온라인 해킹 귀신들은 누구의 ID만 얻으면 돈 빼내는 것은 식은 죽먹기다. 더구나 최근에는 아시안 증오가 두드러지게 심해지고 있는데, 내 운전면허증에 보이는 동양인의 얼굴뿐만 아니라 내 이름이 Chung J Yun 이라고 박혀 있으니 틀림없는 중국사람이니까, 트럼프가 내 뱉은 차이나-바이러스의 보복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같이 퇴직한 노인이 그동안 쌓아온 전 재산이 날아갈 위기를 느낀다. 아마도 여러가지 힘든 일이 생길 것 같다.
너무나 실망해서 저녁초대도 포기하고 우리 부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 정문에 가서 덧문을 열었는데, 밑바닥에서 내 지갑이 굴러떨어졌다. 깜짝 놀래서 지갑을 열어보니 아무것도 손을 안대고 고스란히 다 있었다.
혹시나하고 쪽지에 메모라도 있는지 찾아도 없었다. 연락처만 남겼더라면 보상을 듬뿍 했을텐데. 아마도 나를 잘알고있는 동네 사람? 동양인? 절실한 기독교 신자? 마음 착한 늙은 노부부?
어찌됐던, 그동안 의심하고 증오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다. 미국은 아직도 살아있고 축복을 받을만한 나라라고 느껴진다.
익명의 내 구세주에게 이 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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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진 / 메릴랜드 바둑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