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늘 연녹색 향연으로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이른 아침 파릇한 마음으로 멘델스존의 ‘봄의 노래’를 듣고 있다. 옅고 진한 겹핑크빛으로 피어나는 목련꽃을 바라보며 듣는 피아노 멜로디가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흘러가며 차분하고 평안한 느낌을 준다. 호흡이 정지된 것같던 앙상한 목련가지에서 생명을 잉태한 자연의 신비에 감동을 안고 내 마음도 함께 흐른다.
감미로운 봄바람이 살랑거릴 때마다 힘든 겨울을 함께했던 목련의 이웃나무 가지에서도 막 탄생한 연초록의 꼬물거리는 손들이 너무 앙증스럽고 아름답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생명에서 나오는 광채가 아닐까 싶다. 봄향기를 은은히 풍기며 기지개를 켜고 있는 숲 어디선가 주고 받는 새들의 대화가 청량하다.
뒷마당에 잔디씨를 심고 있다. 코로나팬데믹으로 집안에서 지낸 일년동안 바깥 마당은 잡초만 무성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만큼이나 번식력이 강한 잡초는 주위의 약한 잔디를 제압하고 있다. 남편은 잡초를 긁어내고, 그 위에 잔디씨를 뿌리고 흙을 덮는 건 내 몫이다. 몇 달동안 아팠던 남편이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활력을 찾고 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쌓인 약병을 보면서 평소 잘 해주지 못했던 후회와 연민을 갖게 되고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게 되었다. 삶은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고 앞으로만 흘러간다. 흘려 보낸 인생을 붙들고 아쉬워하는 어리석음은 피하자고 다짐도 해본다.
휠체어에 힘없이 기대 앉은 할머니를 정성껏 밀어주던 하얀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병원에서 보았을 때 마음이 짠-해서 순간 눈물이 났지만, 힘들고 아플 때 함께 나누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확인했다. 늙어서 부부는 최고의 벗이며 동반자이다.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아끼고 사랑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때로는 살면서 안좋은 일도 생기지만 그걸 극복 하면서 사랑은 더욱 단단해짐을 느낀다.
지미 카터 39대 대통령의 이야기를 읽었다. 현재 96세인 그는 여러번 병원에 들락거리면서도 주일학교 봉사도 하고 일년에 일주일은 꼭 헤비타트 집짓기 자선활동을 국내와 국외에서 계속해 왔다. 항상 그의 곁에는 천생연분인 93세의 로잘린 여사가 있다. 부부가 함께 노년을 정답게 살면 혼자있는 노인보다 치매 발병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서로가 의지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생활습관을 독려하며 산다는 것이다. 잉꼬부부로 살면 자녀들에게도 본이 되고 가족간에 행복을 전해주게 된다. 카터 부부는 7월이면 결혼 75주년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손잡고 산책하고 웃음띈 얼굴로 변함없이 금슬 좋은 부부의 모델이 되고 있다. 각자의 공간을 존중해주고 취미를 공유하며 의견 충돌이 있었다면 반드시 당일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화해를 하고 성경을 읽는다는 그들만의 비결이 있다. 성숙된 믿음을 갖고 잘 익은 포도주처럼 농축된 사랑으로 영글어진 결혼 생활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비결이다.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 ‘봄’을 좋아한다. 한가로운 들녘이 펼쳐지고 전원의 새들과 양치기와 요정들이 튀어나올둣 경쾌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든다. 곡을 들을 때마다 모든 나무가지에서 정답게 새 순들이 뻗어가는 초록의 향연이 느껴진다.
봄은 진실되고 한결같다. 세월의 무상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육체는 시들어 가겠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 때 존재의 향기가 봄향기처럼 그윽하게 퍼져서 후세에게 존경받는 무늬와 색채로 남겨지길 희망한다.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잡초는 마음에서 뽑아내고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파란 씨앗을 심고 싶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고 이웃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며 진심으로 도와주고 밝게 생활할 수 있다면 내 마음에도 봄처럼 아름다운 싹이 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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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