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문화생활에 나섰다. 1년2개월 만이다.
16일 말리부의 게티 빌라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작’ 전시회를 관람했고, 18일엔 친구들과 오스카상 후보작 ‘노마드랜드’를 ‘영화관에서’ 보았다. 모두 백신주사를 맞아서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랜드마크 극장은 500석 규모 스크린에 20명도 들지 않았을 만큼 아직 팬데믹 여파가 생생했다.
게티에서 프레스 프리뷰 초대가 날아왔을 때, 너무도 반가워서 즉시 RSVP를 했다. 전과 다른 점은 시사회가 한날 한시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이틀 중에서 원하는 시간대를 정하는 것이었다. 가장 첫날 가장 이른 시간을 예약했고, 금요일 아침 일찌감치 도착하니 일착이었다. 아름다운 게티 빌라 정원을 혼자 걸으며 마스크를 내리고 싱그럽고 향긋한 나무냄새 꽃냄새 봄 냄새를 잔뜩 들이마셨다. 새소리가 요란했다.
전시 프리뷰의 프로토콜도 달라졌다. 일단 입구에서 체온검사와 가방검사를 했고, 전에는 관장과 큐레이터들이 나와 전시 개요를 설명하고 전시장 투어를 해주었으나 이번에는 아무 공식행사 없이 다짜고짜 각자 관람하는 것이었다. 늘 준비돼있던 커피와 쿠키 등 간단한 요깃거리도 없었고, 두툼한 프레스 킷도 없었다.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인 듯했다.
그래도 얼마나 감회롭던지, 인류 최초의 도시와 문자가 형성된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 3천년의 유물을 하나하나 찬찬히 둘러보았다.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을 대여해온 이 전시는 1년전 열릴 예정이던 것이 이제야 관람객을 맞게 된 것이다. 게티 빌라(Getty Villa)의 일반 오픈은 내일(4월21일)부터, 백신 맞은 분들은 오랜만에 바닷바람도 쐴 겸 나들이하면 좋을 것이다.
한편 게티 센터(Getty Center)의 오픈은 5월말로 예정돼있다. 게티 센터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전시, ‘미켈란젤로 드로잉전’이 눈에 삼삼하다. 게티가 수년간 공들여 미국에 처음 선보이는 특별전이었는데 개막 보름 만에 팬데믹으로 문을 닫아야했다. 코로나 때문에 취소된 수많은 전시와 공연들 가운데 가장 안타깝게 여겨졌던 기획전이다.
미국 내 백신 접종이 늘고 코로나 감염과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미술관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LA카운티 뮤지엄(LACMA)이 이달 초 문을 열었고, 노턴 사이먼은 5월 중순, 브로드(The Broad)는 5월26일, 모카(MOCA)는 6월3일 개막 예정이다. 스커볼 센터는 5월15일 중국의 유명한 반체제작가 ‘아이 웨이웨이’ 특별전과 함께 문을 열고,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은 5월8일부터 백남준 50년 커리어를 총망라하는 대형회고전을 연다. 물론 아직까지는 시간 예약된 티켓을 구입하고, 마스크와 거리두기 등 코비드 안전수칙을 지켜야한다.
캘리포니아 주가 완전 정상화되는 6월15일이면 지난 1년 무겁게 드리웠던 수많은 공연장의 커튼도 올라갈 것이다. 첫 스타트는 5월말 시작될 뮤직센터의 야외 댄스공연, 이어 할리웃보울이 7월초 개막하고, 가을에는 한 시즌을 통째로 접어야했던 LA필하모닉과 LA오페라가 새롭게 2021/22 시즌을 시작할 것이다. 댄스컴퍼니들도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하고, 연극 무대의 커튼도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우리의 삶, 문화생활도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동안 예술계가 겪은 고통은 참담했다. 미국문화예술 후원단체 AFTA에 따르면 문화예술계의 손실액은 총 148억달러에 달한다.
뮤지엄 협회의 추산으론 박물관 동물원 수족관 등을 포함해 미술계는 2020년 한해 동안 50억달러를 잃었다. 심지어 몇몇 뮤지엄은 재정난 타계를 위해 소장품들을 경매에 내다팔기까지 해 미술계의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공연계는 더 심각하다. LA필만 해도 월트디즈니 홀과 할리웃보울의 입장수입 1억500만달러가 사라졌고, LA오페라는 작년 가을 손실액이 3,100만달러였다. 미국 최대의 공연단체 메트 오페라는 3,000명에 달하는 정규직원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해고 또는 무급 휴직됐고 1억5,000만달러의 재정 손실을 입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메트의 연주자 상당수가 유럽 등지로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고, 단원의 약 40%는 주거비용을 줄이기 위해 뉴욕을 떠났으며,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악기를 판 사람도 있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아마도 공연예술가들에게는 이런 재정적 손실보다 ‘무대의 부재’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배우, 연주가, 성악가, 무용가 등 스테이지에 서는 사람들은 매일 몸과 테크닉을 단련하는 지속적인 신체훈련과 무대 감각, 팀원들과의 콜래보레이션을 유지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무대와 연습실이 모두 문을 닫아버린 상태에서 각자 고군분투해야했으니 그 신체적, 정신적, 물리적 손실은 계산 불가능한 상흔을 남겼을 것이다.
우리 모두 힘들었지만 더 힘든 시간을 보내온 이들에게 격려와 박수를 보낸다. 더 좋은 공연, 더 성숙해진 모습, 한층 더 깊어진 예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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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