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 유전자 속에는 끊임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새겨져 있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해온 과정은 곧 이동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인간’이라 정의했다.
그런데 이런 본능이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에 따른 팬데믹으로 오랜 기간 억압됐다. 바이러스가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급속히 확산되면서 국가 간 이동은 물론 국내 이동까지 규제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여행은커녕 집밖 나들이조차 마음대로 하기 힘든 시간이 계속됐다. ‘호모 비아토르’에게는 정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지난 1년이었다.
지속되는 팬데믹으로 전 세계 여행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여행길이 막히면서 천문학적으로 쌓여온 업계 손실액은 정확한 추계가 불가능할 정도다. 유엔 세계여행기구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 여행객 감소에 따른 매출 감소는 1조3,000억 달러에 달했다. 지난 세계 금융위기 당시보다 11배 이상 많다.
여행업계가 받은 타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계는 크루즈 업계의 영업 실적이었다. 업계 최대 업체인 카니발 사의 지난해 3분기 실적을 보면 달랑 3,100만 달러로 2019년 같은 분기의 65억 달러보다 99.5%가 줄었다. 도무지 같은 업체의 실적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직접 여행의 욕구를 채울 길이 막히자 이를 간접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감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캠핑 사이트 수요가 폭증했다. TV에서 재방송하는 여행관련 프로그램 시청을 통해 여행의 욕구를 달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를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는 욕구들이 표출된 것이다.
코로나 백신접종이 확대되고 팬데믹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기미가 보이자 1년 넘게 억눌려온 ‘호모 비아토르’의 여행 본능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여행관련 한인업소들에 로컬 및 한국여행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업계는 이런 분위기에 고무된 듯 여행이 본격화될 것에 대비하느라 분주하다.
백신접종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면서 접종 완료자들을 고객으로 한 여행상품들이 하나둘씩 출시되고 있다. 또 올 가을쯤이면 상황이 거의 정상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그에 맞춰 내놓을 여행상품들을 개발하느라 바쁜 모습들이다. 하지만 아직은 소규모 단위의 국내여행이나 모국방문 상품이 대부분이다. 한인들이 선호해온 해외여행 패키지 상품은 백신여권과 국가별 팬데믹 상황 안정 등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많아 시기상조이다.
여행업계가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완전 회복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팬데믹 초기 ‘코로나 진앙지’였던 뉴욕의 경우 관광산업이 완전 회복되려면 최소 4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따스한 봄을 맞으려면 한동안은 추운 계절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여행업계는 무수한 이들의 여행본능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여행관련 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 10개 중 하나는 여행업과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 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여행업의 부활은 한인경제 회복에도 필수적이다.
작가 김영하는 자신의 책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 팬데믹 시기에 여행은 코로나로 지친 마음을 달래주고 불안을 도닥여줄, 더할 나위 없는 따스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호모 비아토르’는 그 시간이 빨리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