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적폐 세력의 침몰

2021-04-1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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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7일 보궐 선거는 예상대로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오세훈이 거의 20% 포인트, 부산 시장 선거에서는 박형준이 30% 포인트 가까이 이겼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난 것은 원래 여당이 불리한 선거였는데다 악재가 연 이어 터졌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자살하고 역시 성추행 의혹으로 물러난 오거돈 부산 시장이 사임하면서 치러지게 됐다. 더불어 민주당은 자기 당 귀책 사유로 보궐 선거를 치를 때는 후보를 내지 않기로 한 당헌까지 고쳐가며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 자체로 염치없는 일인데다 계속 나쁜 뉴스만 나왔다. 지난 3월 민변과 참여 연대는 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광명 시흥 등지에서 내부 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한 사실을 폭로했다. 거기다 ‘재벌 저격수’라 불리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 실장과 ‘깨끗한 시민 운동가’ 이미지를 갖고 있던 박주민 더불어 민주당 의원이 임대차 3법 발효 직전 전세금과 아파트 임대료를 대폭 올린 사실이 밝혀졌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박원순 성추행 의혹과 자살로 치러지는 선거인데도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의도적으로 “박원순 향기”를 운운하며 계속 그를 소환했다. 박영선 후보가 그만 하라고 호소했는데도 그치지 않았다. 하긴 임종석을 나무랄 것도 없는게 박영선은 성추행을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른 고민정을 캠프 대변인에, 남인순, 진선미를 공동 선대 본부장에 임명했다. 이들은 이것이야말로 2차 가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직을 그만 두기는 했지만 선거 운동은 계속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민주당 지도부의 헛발질은 계속 됐다. 이해찬 전 대표는 한 방송에 나가 이번 선거는 “거의 이겼다”라고 자신하는가 하면 이낙연 대표는 “3% 선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선거 결과 눈길을 끄는 것은 한 때 문재인 정부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20, 30대가 대거 돌아섰다는 점이다. 특히 20대 남성은 72%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는데 이는 60대 남성 70%보다 많은 것이다. 현장에서도 오세훈은 2030 청년 유세단 수백명과 함께 캠페인을 벌인 반면 박영선은 민주당 청년 당원으로 겨우 연단을 채웠다.

한 때 자신을 지지했던 20~30대가 등을 돌리자 여권과 친여 인사들은 ‘돌대가리’ ‘세상에 대한 경험이 없다’며 이들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초선 의원 5명이 ‘2030 의원 입장문’을 통해 “조국 전장관이 검찰 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분열돼 오히려 검찰 개혁의 당위성과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닌가 뒤돌아 보고 반성한다”며 “어느새 민주당은 ‘기득권 정당’이 돼 있었다… 나만 정의라고 고집하는 오만함이 민주당을 이렇게 만들었다”라고 밝히자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이들을 ‘초선 5적’이라고 부르며 이들은 선거 운동을 도와주기는커녕 “뒤에서 칼 꽂고 뒤통수 치고 앉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청년들의 마음이 왜 문재인 정부에서 떠났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이란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며 급속한 최저 임금 인상을 밀어부쳤다. 그 결과 수많은 자영업자가 파산하고 청년 알바 일자리가 사라졌다. 그 다음으로 25번의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폭등해 청년들이 집 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던 조국 전 장관 일가가 자기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표창장과 인턴 경력을 위조한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여당은 감싸기에 급급했다. 그뿐이 아니다. 여성 인권 옹호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박원순이 보좌관을 상습 성추행 한 의혹을 받자 자살했는데도 피해 여성에 대한 2차 가해는 계속됐다.

청년들 입장에서 보면 지난 4년간 문재인 정권이 한 것은 일자리와 내 집 마련 기회 박탈, 입시 공정 훼손, 성추행 가해자 옹호였다. ‘적폐’란 ‘쌓인 폐단’이란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간 폐단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머리가 돌지 않는 한 이런 정부를 계속 지지할 수 있겠는가. 2030 세대는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한 탓으로 지금 가진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들도 4050이 되고 사회의 주역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 세대의 마음을 잃은 정치 세력의 미래는 없다고 봐도 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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