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심각한 아시안 집단상처 치유 나서야

2021-04-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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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연쇄총격 참사 이후,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정신건강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외출하기가 무섭다는 사람이 부쩍 늘었고, 마켓이나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누군가 다가오면 겁부터 난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노부모를 둔 자녀들은 부모가 혹시라도 인종혐오 범죄의 피해자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호신용 호루라기와 페퍼스프레이를 구입하는 등 불안과 걱정이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내에서 아시안 차별과 혐오범죄는 언제나 있어왔다. 특히 지난 1년 동안은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지가 중국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출신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아시안에 대한 증오행위 및 범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중 한인들의 피해는 중국계 다음으로 많았다. 영어가 유창한 2세나 3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종 차별행위를 겪었을 때 대부분의 아시안의 대처방법은 참거나 무시하고 침묵하는 것이었다. 부모세대로부터 늘 들어온 말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라” “문제를 만들지 말라”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서 성공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틀랜타 스파에서 6명의 아시안 여성이 살해된 사건 이후 아시아계에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의 아우성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팬데믹 격리생활에서 쌓여온 스트레스에 무차별 공격에 대한 공포와 분노가 더해져 폭발 시점에 이른 듯하다.

정신과 의사들 및 심리치료사들에 의하면 큰 정신적 충격으로 겪게 되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치솟았고 슬픔, 불안, 트라우마, 우울증, 고립감 등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계속 늘고 있다. 문제는 애틀랜타 총격사건 이후 미 전역에서 심리치료사들에게 상담 요청이 쇄도하고 있으나 아시안의 정서와 문화, 언어를 이해하고 치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의 숫자가 태부족하다는 점이다.

커뮤니티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아시안 인종혐오범죄에 집단적으로 대처하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전담기구와 서포트 그룹이 있어야겠다. LA 한인가정상담소가 오는 17일 줌 화상으로 개최하는 ‘한인정신건강 전미 컨퍼런스’도 좋은 시도의 하나다.

이제는 참지 말아야 한다. 한 귀로 들은 걸 흘려버려서도 절대 안 된다. 화를 안으로 삭이지 말고 목소리를 키우고 치유방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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