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칙칙했던 긴 겨울을 밀어내고 소리 없이 봄은 왔다. 봄은 정녕 기쁨에 쌓인 계절이며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흠뻑 물오른 수양버들은 가지마다 온통 연두빛으로 휘감은 채 불어오는 봄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추며, 꽃샘추위 속에서도 본격적인 봄기운을 뿜어대는 대자연의 법칙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자연은 어김없이 빨주노초파남보의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특히나 단아하고 청초한 버지니아주의 꽃, 도그 우드(Dog wood)와 눈부시도록 하얀 꽃들이 일제히 피어나 화사함과 마음의 평화에 젖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특히나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겪으며 일 년여 만에 큰 딸네를 방문해 첫 아침을 맞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 몰라보게 커버린 의젓하고 믿음직스러운 틴에이저의 손주들을 바라보는 마음 흐뭇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며, 서툰 걷기 운동에 뒤뚱거리는 돌잡이 손자, 손녀는 당연 1위의 인기를 끌며 웃음꽃을 피워주었던 추억 속으로 한참 서성거려본다.
문득, 그 옛날 나의 어린 시절, 부모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으며, 나의 6형제가 한데 어울려 낄낄거리며 뛰놀던 그 시절이 그리워짐을 숨길 수 없으며, 애틋한 수많은 추억 속으로 단숨에 타임머신을 타고 달려간다. 모든 형제들의 자녀들도 결혼해 대가족을 이루고 제 삶에 충실하니 주님께서 내려주신 큰 축복에 감사한다.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을 말하는 것이고 기쁨을 만드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건강함 속에서 부지런히 살아가는 즐거움처럼 여유 있는 인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지니는 의미는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것, 바로 정신적인 안정감을 느끼며 행복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가족 말고는 그 무엇도 그걸 줄 순 없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성장해가는 손주들에게는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 속에서, 그리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성숙하고 슬기롭게 강인하게 자기들의 앞날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긴 겨울을 벗어나 봄이 온 것 같이 내 몸 안에 어디엔가 숨어있을 싱그러운 기운 같은 것이 몸 안 가득 고이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이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세월도, 기쁨도, 슬픔도 구름처럼 지나가리라. 그러나 나는 인생의 무상함을 아는 나이가 된다고 해도, 내 인생의 봄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리라. 모든 생명이 빛과 따사로움을 향하여 나아가듯이. 그리고 봄의 향기와 함께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 추억들이 그리움의 파도가 되어 출렁출렁 정겹게 밀려오고 또 밀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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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자 / 수필가 애난데일,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