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심의 무서움

2021-04-0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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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4.7 보궐선거가 여당의 참패,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뚜렷한 민심 이반 현상 속에서도 지지층이 막판 결집해 판세를 뒤집어줄 것이라는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고 있던 여당은 예상을 뛰어넘는 참패에 망연자실하는 표정이다. 여당이 기대했던 ‘샤이 진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선거 전 실시된 여론조사들에서 표출됐던 민심이 고스란히 투표장의 표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보선 결과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여당이 코로나19 팬데믹 방역 성과를 토대로 국민들의 신뢰와 점수를 얻어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받아든 참담한 성적표라는 사실이다. 짧은 기간에 국민들이 보내줬던 지지를 다 까먹은 것이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이유가 무엇인지 집권세력은 겸허하게 반성하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이다.

여당은 출발부터 좋지 않은 여건과 분위기 속에서 선거를 치러야 했다. 보궐선거가 자당 소속 시장들의 성 추문으로 치러지게 된 데 따른 원죄 책임론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때마침 터진 LH 사태로 판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의혹이 나오면서 가뜩이나 좋지 않던 부동산 민심이 한층 더 악화됐다.


반면 여당이 야당 후보들에 대해 제기한 갖가지 의혹들은 기대만큼 파급력을 갖지 못했다. 연일 맹공을 퍼부었음에도 민심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야당을 엄호하고 감싼 보수언론들의 보도가 한몫 했다. 일부 보수언론은 제기된 의혹을 적극적으로 검증하기보다는 보도 자체를 외면하거나 마치 야당 선거캠프인양 이들의 일방적 입장만 대변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렇지만 여당은 자신들이 집중한 네거티브 공세가 작동하지 않은 것을 언론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유권자들이 지나친 네거티브에 공세에는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이번 보선에서 확인됐다. 집권여당인 만큼 정책과 인물을 가지고 선거에 임했어야 했음에도 돌아선 민심에 다급했는지 상대 후보 깎아내리기에만 집중하는 패착을 범했다.

네거티브 실패는 여당에게 뼈아픈 교훈이 되어야 한다. 채 1년도 남지 않은 대선 등 앞으로 치러야 할 선거에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다. 야권의 대선 후보군에 속한 인물들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 역시 자칫 역풍을 불러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보선의 성적표는 앞으로의 선거들을 어떻게 치러야할지 제대로 깨우쳐준 쓰디쓴 약이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집권여당이 참패함으로써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동안 국정과제를 밀고 나갈만한 동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별로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반성하고 자성하면서 맡은 바 책무를 다하는 수밖에 없다.

선거만을 의식해 너무 정략적인 계산으로 사안들에 접근하다 보면 자기모순과 ‘내로남불’의 행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정치적 환경과 요동치는 민심 속에서 중심과 원칙을 잡고 나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국민들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조급증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이 선거만을 의식해 계산적인 정치를 편다면 또 한 번의 참패는 필연적이다.

“정치에서 6개월은 일생”이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민심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있다는 얘기다. 지난 총선부터 이번 보궐선거까지의 1년을 떠올린다면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이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국민들의 보다 나은 삶만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제 길을 걸어간다면 민심을 다시 얻을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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