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후수의 선수’

2021-04-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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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민심이 변하고 있다. 1%의 박빙 싸움이다.” “정권 심판 민심이 커지고 있다. 두 자릿수 차이로 이길 것이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바로 앞둔 시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인 국민의힘이 각각 펴고 있는 주장이다. 어느 주장이 맞을까. ‘뚜껑을 열어보아야 안다’-. 선거시즌만 되면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니 예단은 금물이다.

그렇지만 각급 여론조사와 선거 분위기를 감안할 때 박영선 대 오세훈의 대결로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권선거는 오세훈 쪽이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박영선은 하강세를 보여 온 반면 오세훈은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 가운데 오세훈은 20% 포인트 안팎으로 리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여론조사들이 가짜뉴스가 아닌 한 일단 오세훈 우세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박영선과 오세훈은 사라지고 ‘생태탕’만 남았다”-. 네거티브로 일관했다. 박영선후보 진영의 선거전략 말이다. 그 네거티브전략이 그런데 그만 꼬이고 말았다. 이에 대한 촌평이다.

구글트렌드 검색빈도 분석에 따르면 검색어 ‘생태탕’은 5일 한때(한국시간) ‘박영선’을 추월했다. 생태탕 논쟁이 후보의 존재감을 아예 덮어버리면서 선거판은 블랙코미디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왜 여당은 생태탕으로 일관했나. 일마다 꼬였다. 그 시발은 엘에이치 투기 의혹이다. 그런 와중에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고위공직자들의 전형적 ‘내로남불’식 파렴치 행각이 드러났다.

자신들이 만든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에 자신 소유 아파트 임대료를 높게 인상한 것. 그러니 민심은 싸늘하게 식을 수밖에. 거기다가 한 때 자랑하던 K방역도 백신 도입 지지부진과 함께 아득한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

이 흐름을 뒤집을 묘수는 무엇인가. 오로지 네거티브로 가는 거다. 따질 것 없이 상대후보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벌인 것이 오세훈 후보가 16년 전인 2005년 서울 내곡동 처가 땅 측량 현장에 갔고 인근 생태집에 갔다는 공세다.

그 때 그 생태집 주인과 아들이 증인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 증언이란 것이 시간이 가면서 오락가락이다. 오세훈이 백 바지에 페라가모 신발을 신었다고 했다가 오세훈인지 몰랐다, 기억이 안 난다고 바뀌는 등.


여기서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후수(後手)의 선수(先手)’라는 바둑 격언이다. 상대의 수를 뒤따라만 가다가는 진다. 그래서 바둑에서는 유리한 곳에 먼저 착수하는 선수를 중요시 여긴다.

그런데 후수라도 반드시 둬야 하는 요처가 있다. 그 요처는 하수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급급하지 않고 멀리 보고 힘을 비축해 놓는 수가 바로 ‘후수의 선수’다.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민주당은 ‘당 소속 공직자의 잘못으로 재보궐선거를 치르면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만들었다. 이 당헌에 충실해 4.7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았으면 이는 바로 ‘후수의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거대여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지방 보궐선거에는 그만큼 유권자 관심이 쏠리지 않는다. 4.7보궐선거가 내년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이란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절차상의 문제까지 일으키면서 당헌을 개정해 후보를 냈다. 정치적 이익에 급급해 내린 민주당의 그 결정에 좌파 언론까지 내로남불로 비쳐지지 않을까 우려를 했다.

그렇게 해서 치러지는 게 서울시장 보궐선거다. 민주당이 패배할 때 어떤 결과가 올까. 문 대통령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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